책은 둘러보기만 해도 뇌를 자극한다
집에서 비탈길을 지나 공원 하나를 둘러가면 서점이 있다.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니 가깝지는 않은 거리다. 그래서 하늘 청명한 주말을 골라 하염없이 걷기 좋을 때 서점을 향한다. 악천후가 아니라면 거의 주말마다 가는 셈이다.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서점인데 자주 들러서 이제는 어느 서가에 무슨 책이 있는지 알 지경이다. 그래도 종종 큐레이션 되는 도서가 바뀌기 때문에 그걸 보기 위해서 계속해서 서점에 들른다.
서점에 들어서면 매대를 먼저 살펴본다. 새로 들어온 책이나 굿즈를 재미있게 구경하고, 서점 주인이 좀 더 힘주어 팔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도 살펴본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지만, 서가도 한 번 쭉 둘러본다. 서가의 소소한 변화를 즐기며 살펴보다가, 끌리는 책이 있으면 하나씩 꺼내보며 책 구경을 한다. 비밀 아닌 비밀이 있다면, 사실 다 사버리고 싶은 충동을 꾸욱 눌러 참는다는 것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들고 올 수도 없을 만큼 구입해버릴지도 몰라서 정신 바짝 차리고 구경을 한다. 꼭 소장하고 싶은 책만 신중하게 골라 한 두 권만 구입을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책 제목을 모두 훑고 겉표지도 샅샅이 살펴보게 된다. 책 제목 하나에 세상 하나가 숨겨진 기분이 들고, 작가의 이름을 보면 그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가 열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가보지 못한 세계, 겪어보지 못한 경험들이 서점에 정갈하게 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책을 꺼내 들고 앉은자리에서 읽게 되면 정말 많은 영감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온라인 서점이 아주 잘되어 있어도 오프라인 서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책 한 두 권을 들고 나오면, 청명한 하늘이 날 반겨준다. 서점을 나설 때는 항상 ‘좋았다’고 느낀다. 그 느낌만으로도 하루가 굉장히 충만해진다. 서점에 있는 시간이 길고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서 주로 혼자 다니는데, 혼자서 다시 공원을 걸어 나오면 그때부터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한껏 책을 만나고 난 여운을 느끼는 시간이라 나에게는 이 시간이 서점에 있는 시간만큼이나 무척 소중하다.
많은 텍스트에 노출되면 그걸 소화시키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거기에 걷는 활동은 뇌를 정리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조용한 공원을 산책하듯이 걷다 보면 방금 서점에서 본 텍스트들이 차분히 정리가 된다. 서점에서 눈에 담고 온 텍스트들은 주로 책 등을 읽으며 눈에 들어온 제목들과 매대를 둘러보며 구경한 책표지들이다. 이 텍스트들은 책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보여주어서 내 안에 많은 질문들을 만들어준다.
서점에서 얻어온 이 질문들은 평소에 생각해본 적 없는 철학적 문제들을 마주 보게 해 준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 어딘가의 사회적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런 질문들이 내 안의 세계를 확장해주고 더 깊이 문제를 파고들게 해 준다. 텍스트가 압축적으로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들이 질문을 통해 머릿속에서 팡팡 터지면서 제자리를 찾아 조직화되는 것이다.
물론 조용히 공원을 걷다 보면 복잡한 문제뿐만 아니라, 읽고 싶은 소설의 내용을 상상해본다던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좀 더 기대해본다던가 하는 가벼운 생각도 머릿속을 떠돈다. 순수하게 새로 나온 책이 어떻고, 읽고 싶은 책이 생겼고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또 글을 쓸 때 어떻게 쓰는 게 좋을지도 고민한다. 대단한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문 작가와 편집자가 만들어낸 책들은 좋은 글짓기 공부가 된다. 이리저리 책을 훑어보면서 받은 느낌들을 글을 쓸 때 참고하는 셈이다.
그 외에도 내가 접한 텍스트와 관련된 생각들이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간다.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생각에 푹 빠져버리게 된다. 갈 때는 길게 느껴졌던 길이 올 때는 무척 짧게 느껴진다.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넓은 공원을 지나 가파른 비탈길의 끝에 올라서 있곤 한다. 생각에 빠져있느라 꽤 느린 걸음이었을 텐데 시간은 무척 빨리 간 듯한 기분이 든다.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도 서점에서 돌아오는 길이 좋은 산책이 된 것 같다. 서점에서 뇌를 한껏 자극시키고 걷는 건 뇌를 발전시키는데 아주 좋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책 한 권을 붙들고 그 책의 세상에 푹 빠지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만,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어딘가 머릿속에 불이 켜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난 후에 깊은 생각에 몰두해보는 것도 나를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책이 많은 곳에 다녀온다면 어디서나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다. 동네 서점이든 대형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수없이 쌓여있는 지식과 지혜에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이렇게 지식의 숨을 쉬어보자. 뇌에도 좋은 자극이 되고 정서적으로도 어딘가 시원해지는 경험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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