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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Feb 17. 2021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업무 시각화(Making Work Visible) - 도미니카 드그란디스


서평의 제목을 일부러 반대로 지어보았다. 

일은 누군가 가시화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니까.


업무와 관련된 책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의외의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업무 시각화라는 제목처럼 이 책의 주제는 '일을 시각화하자'로 일관되어 있다. 관련된 사례를 들고, 방법으로 칸반 보드를 주로 사용한다. 어찌 보면 칸반을 알리는 걸 주요 내용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칸반은 이미 유명한 업무 관리 방법인 만큼, 이 글에서 자세히 적지는 않겠다. 여기서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칸반 보드의 효과와 어떤 점을 오해하고 어떤 점을 깨닫게 되었는지를 위주로 적어보려고 한다.



일을 가시화해야 하는 이유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일을 시각화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아래는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결과이다.




첫 번째 이유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 나오는 많은 사례들과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무슨 일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불안하게 마련이다. 개발팀이 일의 진행 상황을 가시화해서 보여주지 않는다면, 관련된 마케팅 팀, QA 팀, 경영진까지 모두 불안에 떨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고, 개발팀은 같은 대답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하면서 개발에 투자할 시간을 빼앗긴다. 개발팀 자체의 신뢰도가 내려가는 것도 덤이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로 '일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이다. 일을 하고 있는 팀 자체도 일이 정말로 '완료'된 걸로 볼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일을 가시화하지 않으면 '거의 완료'된 일들은 쌓이는데 실제로 '완료'된 일은 없어서 곤란한 때도 여러 번 생긴다. 이런 상태가 되면 '거의 완료'된 많은 일들을 동시에 처리하느라 야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거의 완료'된 상태의 일들이 얼마나 쌓이고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면, 그냥 쌓아만 두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팀원들이 지금 가장 많이 쌓여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빠르게 깨닫고, '거의 완료되었다'라고 믿는 대신, 일을 치우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일을 측정하기 위해서'이다. 칸반 보드를 사용하면 어떤 일이 얼마나 걸리고 있는지, 병목이 무엇인지, 지연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알기 쉽다. 팀의 퍼포먼스도 알기 쉽고, 일을 방해하는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찾아내기 쉽다. 이 과정을 통해서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일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투명하기만을 바라지는 않을 수 있다. 계속해서 칸반 보드에 시간을 쏟는 작업도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시화되지 않은 일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무엇이 중요한지, 우리 팀의 목표와 할 일은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무엇보다도 측정되지 않은 일들은 언제 문제점으로 발견될지 모르는 채로 서서히 팀을 야근의 늪으로 가라앉게 만들 수도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 이 책은 일이 시각화되어서 어떤 이점을 얻는지를 더 자세히 알려준다고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시종일관 '시간 도둑'이라고 표현하는데, 반대로 보면 일을 시각화하여 더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칸반 보드의 오해와 효과

나는 일을 하면서 팀 단위로 칸반 보드를 여러 번 사용해보았는데, 일이 많을수록 칸반 보드에는 어마 무지하게 많은 카드가 생긴다. (물론 커다란 일을 아주 작게 나눌 수도 있다. 더 작게 일을 나눠서 적는 것이 더 추천되는 방식이다.) 나는 칸반 보드에 카드를 만들고 내용을 적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TO DO 리스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시각화 툴이 그렇게 미관상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싫어한 점도 다소 작용할 것이다. 주로 웹페이지로 사용한 점도 한몫을 했는데, 직업상 그런지는 몰라도 컴퓨터로 하는 일이다 보니 일처럼 느껴졌다는 점도 있었다. 실제로 커다란 벽에 칸반 보드를 만들어놓고 손으로 직접 포스트잇을 붙이다 보면 훨씬 재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칸반 보드의 효용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매일 하는 스크럼은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칸반 보드는 일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To Do -> Progress -> Done 으로 옮기는 것도 자동화해서 쓸 수 있었지만 이것이 효율적인지를 알 수 없었다. TO DO 리스트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내가 칸반 보드의 효과를 본 건, 다른 사람의 업무 진행도를 보게 되었을 때였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내 일과 관련 있는 일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를 칸반 보드로 보았을 때 유용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일을 전달해 줄 때 칸반 보드에 카드를 만들어서 주면, 딱히 내가 일부러 확인하려고 물어보지 않아도 칸반 보드만으로 일의 진행상황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관리자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들고 있는지(!)를 보여줄 때였다.


책에서도 경영진에게 칸반 보드를 보여주며 일의 우선순위를 어필할 때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일정과 리소스 상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영진과 의사소통을 할 때 무척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모든 부서의 일을 칸반 보드로 만들려고 했던(보이기는 할까) 경영진이 생각나기도 했다.




업무 시각화

저자는 칸반 보드를 일상생활에서도 활용 가능하다고 예시를 이것저것 보여준다. 실제로 나는 트렐로(Trello) 등을 사용해서 업무 관리를 하는 분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애초에 해야 할 일을 적어서 관리하는 것이 부담스러운(귀찮은) 사람이라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업무에는 칸반 보드를 사용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팀에 제안을 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단순한 TO DO 리스트보다는 칸반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내가 어떠한 일들을 우선적으로 하고 있는지, 어떤 일 때문에 다른 것들을 못하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칸반이 아니라 '시각화'이다. 이 책에서 가장 크게 공감했던 것이 인간의 대부분은 시각 정보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업무뿐만 아니라 학습, 연구 등도 단순 텍스트 뭉치로 놓아두기보다는 그래픽을 사용하면 훨씬 눈에 들어오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칸반 보드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정보를 시각화해서 저장해놓는다면, 보기에도 좋고 나중에 남들에게 꺼내서 보여줄 때도 굉장히 효과가 좋다. 


시각화 툴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에는 잘 시각화해서 정리해두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성격은 귀찮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즐기면서 업무나 개인적인 일들을 시각화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게 시각화하면 기분도 좋고 머리 속도 깔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라 후련해지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시각화에 대한 많은 영감과 깨달음을 준 책이라 흥미진진했고,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시각화에 문외한이거나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또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 읽어도 많은 영감과 상세한 시각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공감도 많이 가서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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