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 버리기에는 아까운 밤
아무 걱정도 없는 밤이 있다. 정확히는 걱정을 묻어버리고 내 멋대로 긍정적으로 생각해버리는 밤일 것이다. 잠을 자려고 불을 끄고 이불속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자유가 시작된다. 하루 중 이만큼이나 오롯하게 내 시간인 시간이 있을까. 날씨 덕분에 이불속에 들어가서도 쾌적하다면 그야말로 최상이다. 몸을 스치는 옷이나 이불의 촉감도 최고다. 끝났다-하고 하루의 끝을 안도하며 보내는 밤이다.
이런 밤에는 잠들어버리기가 아깝다. 무엇이든 내 맘대로 한 두 가지는 해야 할 것 같다. 그냥 잠들어버리면 억울할 것 같다. 그래서 수면의 적이라는 스마트폰을 켜고 이것저것 눌러본다. 게임도 하고 웹툰도 보고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음악만 켜놓고 깜깜한 천장을 바라본다. 새벽에 듣는 음악은 특별하다. Lasse Lindh의 C'mon Through와 같은 음악은 밤의 음색으로 좋다. 찬찬히 가라앉는 기분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귀만 열어 놓는다.
갖은 상념이 지나간다. 행복했던 기억, 부끄러웠던 기억, 내가 왜 그랬지 하고 이불 킥을 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보면 대부분 쓸모없는 생각이지만, 밤에는 그런 생각들이 어울린다. 그래도 새벽 감성에 취해서 무언가를 남기지는 않는 것이 좋다. 다음 날 아침에는 감당할 수 없는 글들일 테니.
꽤 오랜 시간 동안 잠이 들지 않는다. 다음 날이 휴일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일의 꿀 같은 휴일을 생각하며 좀 더 행복감에 젖어있는다. 고민이 있는 날이라면 끝없이 우울한 생각만 나겠지만, 어떤 날은 내 공간에 누워서 안심하고 잘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너무나 당연하고 작은 행복이지만, 지금 이 시간을 즐기려고 어떤 일들을 해왔나 싶어서 안도감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서 내가 잘 해왔던 일들을 하나씩 헤아려 본다. 그러다 보면 자신감이 차오르고 내일도 무슨 일이든 잘 될 것만 같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이 지나면 어느 새인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린다. 기분 좋은 감성만 꿈으로 남아 기억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다시 아까운 밤이 올 때까지 하루하루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