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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Jun 30. 2021

커피를 끊었다

카페인 중독의 결말

회사 주변에는 1리터짜리 커피를 파는 곳이 있었다.

나는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도 점심을 먹고난 후에 1리터짜리 커피를 마실 때가 있었다. 꼭 1리터짜리 커피를 사먹지 않아도 회사 안에 있는 커피머신으로 그 정도 커피를 늘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커피 없이는 잠이 깨지 않았고, 커피를 아무리 많이 마셔도 심장이 뛰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커피를 덜 마시는 주말에는 몽롱하게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딱히 커피를 깊이 좋아한 것도 아니었다. 원두 종류라거나 신 맛이 느껴진다거나 그런 것은 잘 몰랐고 알기 위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커피가 갖는 의미는 딱 하나였다. '카페인 보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넘치는 카페인을 받아들이고 나면 일을 하기가 수월했고, 아침 잠을 깨기도 용이했다. 다만 매일 마시는 양이 많아졌을 뿐이고 어느 순간에는 물처럼 마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커피가 '카페인 보충' 이외의 의미를 갖는다면 무엇일까? 어떤 나라에서는 식후의 입가심 또는 그런 여유를 의미할 것이다. 아니면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매개체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자체로 맛있고 향기로운 음료일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직장인에게 커피는 그저 일을 더 잘해내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직장인들에게 커피는 삶의 일부를 일로 바꾸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막다른 길에 몰려있을 때, 나는 일을 더 잘해내기 위해서 커피를 더욱 많이 마셨다. 스트레스를 받을 수록 커피를 더 많이 마신 셈이다. 적당량의 커피는 건강에 좋다지만, 나는 그 정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커피를 많이 마셔서 일을 더 할수록 스트레스는 몰려왔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또 다시 커피를 마셔서 해결하려고 했다. 아마 과중한 업무가 주 원인이었겠지만, 커피는 그런 나를 더 많은 스트레스 속으로 펌프질하는 역할을 했다.


결국 과도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이 생겼다. 카페인의 영향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면증을 겪고나면 하루가 더욱 몽롱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다시 커피를 마시고 또 다시 불면증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 정신 건강에는 당연히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 나서야 커피를 끊게 되었다. 아픈 정도가 심해서 회사에 휴직을 던지고 내 몸을 추스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고나니 다시 한 번 커피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커피를 마셔야만 했을까. 나는 내 삶을 일로 치환하기 위해 커피를 마셔댔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커피를 더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커피 한 잔의 여유였을텐데 나에게는 그저 억지로 화이팅을 외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커피는 내 여유와 정신과 삶을 일로 만들어 버리는 과정에 불과했다. 즉, 나는 내 삶과 일을 전혀 분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 커피를 끊었을 때는 아니나 다를까 늘 졸립고 머리도 전혀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 주 한 주 지나면서 충분히 잠을 자기 시작하니 점점 커피 없이도 아침에 정신을 차리기 쉬워졌다. 카페인이 부족할 때 느껴지던 심한 두통도 사라지고 하루 종일 몽롱했던 정신도 점차 맑아졌다. 생각보다 빠르게 카페인 중독에서 벗어나서 나도 조금 놀랐다. 그리고 지금은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아도 아무 문제도 겪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일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도하게 많은 업무를 소화하려고 억지로 커피를 마실 필요도 없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동안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에게는 일이 아닌 삶이 필요했고 커피 없이도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커피로 카페인을 펌프질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미친 짓이었나를 깨닫게 되었다.


좀 더 회복하게 되면 다시 커피를 마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커피를 카페인을 보충하는 의미로 마시지는 않으려고 한다. 커피의 본래 의미를 찾아 나에게도 한 잔의 여유가 되기를,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좋은 음료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일에게 빼앗겨버린 나 자신의 삶을 찾으려고 한다. 현실적으로는 무척 힘들겠지만, 건강을 해쳐보니 나의 삶은 내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커피의 의미도 그렇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처럼 어쩔 수 없이 일에 짓눌려 카페인 중독이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건강을 해치기 전에 일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과중한 업무에서 빠져나오기는 무척 힘들지만, 스스로 삶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더 중요한 것을 잃을 수 있다. 카페인 음료는 내 삶을 얼마나 일로 치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어 준다. 많이 마실 수록 삶이 일에 잠식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게 되기 전에 빠져나오도록 하자. 게다가 안 좋은 상황을 카페인으로 더 좋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되도록이면 커피의 원래 의미를 되찾아 즐겁게 마시자. 커피는 여유롭게 마셔야 건강에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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