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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Jul 10. 2021

어느 장대비 쏟아지는 날

회사원의 이야기

아침부터 덥고 습한 공기가 훅훅 끼쳐오는 것 같더니, 아니나다를까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A는 우산을 쓰고 이제 막 지하철에서 내렸다. 주말이라 기분 전환 삼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기분 전환은 커녕 기분만 더 씁쓸해진 채였다. 비도 거세게 내리고 어서 집으로 들어갈까 했지만, 이대로 들어가기는 아쉬워 근처 카페로 향했다.


한 여름의 덥고 습한 공기에 장대비까지 내리니 눅눅하고 축축한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카페에 들어서자 적당히 켜둔 에어컨 바람에 습한 기운이 날아가버렸다. A는 쾌적함을 느끼며 카페에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넓은 공간에 숲 속의 목조 건물 느낌이 나는 카페였다. 날씨 탓인지 손님도 별로 없고 한산했다. A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엉망인 일주일이었다. 

일이 잔뜩 쌓이고 밀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부서에 요청한 일도 영 협조적이지 않아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모른다.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보려고 무리수를 던지기도 했다. 덕분에 실수도 해가며 어찌저찌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상사에게는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A에게 기대를 걸고 일을 맡겼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그것만으로도 억울하고 미치겠는데, 후임 녀석도 A의 실수를 걸고 넘어졌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고 다른 선임들도 가만히 넘어가는 실수를 따박따박 따져가며 A의 탓을 했다. 상사도 아닌 후임이 자기의 실수를 평가하고 전시하고 있으니 열불이 터져 죽을 뻔했다. 그 자리에서는 좋게 사과하고 어떻게 무마시켜서 조용하게 만들었지만,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이 영웅이라도 된 마냥 정의감에 불타서 어떻게든 '징벌'이라도 해야한다는 기세였다. 


진동벨이 울렸다. A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가지고 돌아왔다.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열불이 나는 속을 식히기에 적당하다. A는 커피를 크게 한 모금 마셨다. 속부터 차가워지며 더위가 물러간다.


'그래도 주말은 쉬어서 다행인가.'


A는 공연히 빨대를 휘적거리며 커피를 저어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다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와 상관없이 세상은 잘 흘러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외로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하늘 가득한 먹구름이 차라리 울어버리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장대비를 이렇게 뿌려대는 것 같았다.


A는 빨갛게 된 눈을 진정시키며 가만히 커피를 바라보았다. 주말이 끝나면 다시 출근을 해야한다. 그 사실이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또다시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주말인데 회사 생각은 그만하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주말까지 어지간히 생각나는 걸 보면 상당히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주말에는 주말을 생각하기도 바쁘다. A는 다시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장대비가 아스팔트 바닥을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A도 흘려보내는 수 밖에 없었다. 회사 일은 회사 일로 내려보내고, 주말은 주말답게 보내야했다. 이렇게 한 층 더 직장인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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