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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Aug 13. 2021

악(惡)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책의 주요 내용은 방송을 통해서도 너무 잘 알려져 있다. 나치 밑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아이히만이 전쟁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가서 살았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납치를 당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는 내용이다. 재판의 결과는 사형이었고 결국 아이히만은 교수형에 처해진다. 재판을 받는 아이히만의 모습은 살육에 미친 악마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공무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며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는 엄청난 수의 유대인 학살이었지만,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아이히만은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는 그런 아이히만을 보고 평범한 사람도 엄청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여러 차례 이야기도 들었고 방송으로도 나온 책이라 사실 책의 내용을 많이 알고 읽었다. 그래서 사실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치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언어 규칙을 사용하는 것과 효율적으로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얼마나 정교하게 일하는지를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이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법적으로 처리하는 절차를 간편하게 만들고 유대인을 수송하는 일을 성실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그야말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나치의 언어 규칙은 '학살'이라는 말 대신 '최종 해결책'을, '강제 이주'대신 '재정착'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했다. 언어 규칙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누구도 그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아이히만을 비롯한 사람들은 언어 규칙을 사용하며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해냈다. 그 성실함의 결과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었던 규모의 학살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런 아이히만을 통해 평범한 사람도 엄청난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처럼 말이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대신 만약 명령에 불복종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거라는 말을 한다. 아이히만은 정신과 의사들도 '정상'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살보다 명령 불복종에 더 많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책에 나온 아래 구절은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의 양심을 어떻게 굳어버리게 만드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아이히만이 말한 것처럼 자기 자신의 양심을 무마시킨 가장 유력한 요소는 실제로 최종 해결책에 반대한 사람을 한 명도, 단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이런 장면을 보고 나치라는 거대한 사회적 압력이 인간의 양심을 어떻게 무력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악이 평범성을 띄는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소속감을 갈망하고 또한 복종하고 싶어 한다는 심리 속에 숨어 있다. 때로는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적 압력을 견디지 못한다. 어느 시대든 잔인한 학살이 일어나면 학살을 명령한 사람과 학살을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살을 직접 명령하지 않더라도 학살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무고한 사람을 살해해서는 안된다는 양심의 명령과는 상관없이 명령에 복종한다. 우리나라의 4.3 사건 및 광주 민주화 항쟁 등의 역사를 돌이켜보아도 실제로 주민들을 학살한 군인들은 아이히만과 마찬가지로 명령에 복종하고 평범한 시민을 인간이 아니라 소거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며 잔인한 일을 하고 말았다.


물론 평범한 사람이 사회적 압력에 항거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군인이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도 하기 어렵다. 나치나 매카시즘과 같이 국가 전체가 잘못된 이념에 휩싸이면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어렵다. 아이히만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악에 휩쓸린 예는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래도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악함의 모습이 특별히 광폭하거나 어두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깨어나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악함을 경계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악의 평범한 모습을 안다면 무조건적인 복종이나 사회적 압력에 밀리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을 보다 상세히 의식하게 된다. 비록 개인이 사회적 압력을 피하기는 어렵더라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택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 준다.


소수의 사람들은 사회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악에 저항하며 선을 실천한다. 어쩌면 선하다는 것은 평범한 것이 아니라 비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의식 없이 쉽게 악에 휩쓸리는 것에 비하면 어떤 문제를 자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악의 평범성은 선이란 무엇인지, 악행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 준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엄청난 학살이 실행되는 과정과 그 일을 실행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악함이 인간을 어디까지 악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비단 유대인과 나치의 역사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인간의 도덕성에 새로운 의문을 품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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