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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Sep 18. 2021

선(善)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가장 적합한 종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종은 사라진다는 말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또는 동물을 해치는 것을 정당화해주었다. 이 말은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이용당하며 폭력을 눈감아주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이 책은 이렇게 보편적인 상식으로 자리 잡은 이 말을 깨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다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정한 것이 어떻게 살아남게 해 줄까? 저자는 '다정하다'는 말을 '협력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협력적 의사소통의 예시로 보노보라는 동물을 살펴보자. 보노보는 영장류인데, 보노보 여러 마리에게 먹을 것을 주면 보노보는 서로 음식을 차지하려 싸우지 않고 다른 보노보와 음식을 나누어 먹으려고 한다.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는 서로 음식을 차지하려 싸워 서로를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에 비해 보노보는 모두가 피해를 보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보노보는 협력적 의사소통을 통해 생존에 더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모든 동물이 협력적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협력적 의사소통은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한다. 가령 상대방의 표정과 감정을 읽고 공감하거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친화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능력을 가진 동물은 같은 종이든 다른 종이든 다른 개체를 다정하게 대할 수 있다. 개는 친화력을 대표할 수 있는 동물이다. 개는 사람과 함께 살기로 선택한 일종의 늑대라고 볼 수 있는데, 오늘날 야생 늑대가 거의 사라져 가는 것에 비하면 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한 개가 훨씬 많은 개체 수를 가지고 있다. 즉, 혼자 살아가는 늑대보다 다정한 늑대가 더 많이 살아남은 것이다.


이렇게 '친화력'을 갖추도록 발달하는 과정을 '가축화 과정'이라고 한다. 인간은 가장 고도화된 '자기 가축화'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다른 인간의 감정을 읽고 의사소통을 하며 협력이 가능하도록 진화했다. 협력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키고 서로의 도움으로 생존 가능성을 높이며 살아남은 것이다. 하지만 이 선한 능력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했다. '자기 가축화'를 겪는 동안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게 대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에게는 엄청나게 잔인해질 수도 있었다. 저자는 인종 차별과 다른 민족을 말살하려는 제노사이드를 예로 들고 있다.


신기한 사실은 인간이 다른 집단을 경멸할 때 흔히 '비인간화'를 한다는 것이다. 즉, 차별을 할 때는 다른 집단 사람들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보고 자신의 집단과 구분 짓는다는 것이다. 흑인을 '덜 진화된 유인원'으로 보거나 아랍계 사람을 상식적인 행동을 벗어난 인간 이하의 집단으로 보는 행위가 그렇다. 특히 트럼프 선거 유세에서는 유례없이 다른 집단을 비인간화하는 수식어가 많이 등장했는데, 이는 어떤 지도자가 상대 집단을 깎아내려 증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경고를 의미한다. 실제로 트럼프뿐만 아니라 히틀러 등 많은 지도자가 혐오와 증오를 부추겨 정권을 잡는 경우가 있었다.


인간의 선한 본능을 생각하면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라는 질문에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협력적 의사소통이 진화의 결과물이라면 우리의 친화력도 진화의 결과물일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은 우리 본능에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집단을 적대하는 마음도 우리 본능의 다른 면이다. 즉, 인간은 선과 악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다.


이전에 읽었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비교하면 선(善)이 무엇인지 더욱 뚜렷해진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는 누구나 악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평범한 인간도 악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 의문을 품었는데, 이 책에서는 반대로 선한 본성 역시도 인간에게 진화의 결과로 남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해 따져볼수록 인간은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권위에 복종하고 집단을 구분 짓는다면 얼마든지 악한 존재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란 그런 복잡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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