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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Nov 24. 2021

생텍쥐페리의 또 다른 소설

야간비행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보다 일찍 나온 생텍쥐페리의 소설이다.

실제 비행기 조종사였던 생텍쥐페리가 비행에 관해 책을 썼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린 왕자>에서도 비행기 조종사가 나오니 생텍쥐페리의 직업이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어린 왕자> 작가의 책답게 무척 감수성을 자극한다. 글 자체가 정말 아름다웠다. 어두운 밤하늘의 별빛을 직접 보여주는 것처럼 표현 하나 하나가 빛나는 소설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글을 접한다는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었다. 아래는 감명깊었던 표현 중 하나를 인용해보았다.


<야간비행>의 실제 초판 이미지로 나온 표지


그는 조금씩 조금씩 나선형을 그리며 자신의 바로 위에서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우물 속으로 올라갔다. 그가 위로 올라갈수록 구름들은 어둠의 진창을 털어 내고 점점 더 맑고 하얀 파도가 되어 그의 주위를 스쳐 갔다. 파비엥은 솟아올랐다.
그는 극도로 놀랐다. 너무나 밝아서 눈이 부실 정도라 잠시 눈을 감아야 했다. 구름들이 한밤중에 그렇게 눈부시게 빛날 수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보름달과 온갖 성좌들이 구름을 빛나는 파도로 바꾸어 놓았다.


소설은 야간비행을 하는 조종사 파비엥의 이야기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착륙장에서 항로 전체를 책임지는 리비에르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소설이 출판된 1931년 즈음에는 야간비행이 무척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파비엥의 이야기는 굉장히 긴장감있게 흘러간다. 하지만 생텍쥐페리가 공을 들여 그리고 있는 인물은 리비에르이다. 리비에르는 훌륭한 관리자로 묘사되는데, 사람 개개인에게 애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차가울 정도로 규율에 엄격한 사람이다. 실존 인물인 생텍쥐페리의 상사를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무척 입체적이고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었다.


이 인물은 관리자라면 누구나 했을 고뇌를 보여주면서도 자신이 맡은 책임에 무척 충실하다. 리비에르의 독백을 읽고 있으면 함께 일했던 상사들이 하나씩 떠오를 정도로 현실감있고 사실적이었다. 하지만 항로를 유지하기 위해 리비에르가 하는 선택은 가혹한 면이 있다. 조직이 아니라 개인의 측면에서보면 억울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 파비엥의 비행의 끝에 리비에르가 선택한 결정은 항로를 개척하는 데 있어서는 무척 희망적이지만, 동시에 묵직한 안타까움도 불러일으켰다. 


리비에르에 관해서는 과연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싶은 장면들도 많고 요즘의 리더쉽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나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큰 재미였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정말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실제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만이 쓸 수 있는 책이자 그의 섬세한 관찰력이 빛나는 소설이었다.


관리자인 리비에르가 등장하는 만큼, 이 소설은 <어린 왕자>보다는 사실적이면서도 어른의 사정이 많은 책이다. 그래도 감수성만큼은 <어린 왕자>가 생각이 날 정도로 따스하고 영롱했다. 위험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어딘가 비장한 이야기의 가운데서도 생텍쥐페리는 상당히 따스한 느낌을 준다. <어린 왕자>에서 느꼈던 어딘가 몽글몽글한 따스함을 간직한 책이었다. 여러 모로 너무나 감명깊은 소설이었고 마음 속에 스며들어 잊지 못할 이야기였다. 생텍쥐페리의 또 다른 소설은 <어린 왕자>와는 사뭇 다르지만 여전히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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