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회사 생활
요즘처럼 계절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뜨끈한 국물이 당기기 시작한다. 코로나 이전의 점심시간에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국밥을 먹으러 갔다. 회사 근처 모퉁이에 있는 국밥집은 제법 손님이 많은 집이라서 추운 날씨에도 밖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날이 추워서 잠바를 껴입고 찬바람을 맞으며 옹기종기 모여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드디어 국밥집에 들어가면 다들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추워서 잔뜩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펴며 자리에 앉으면 다들 비슷한 메뉴를 시켰다. 국밥집 메뉴는 순대국밥 아니면 돼지국밥이라서 메뉴를 통일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국밥은 항상 뚝배기에 나온다. 뚝배기에서 김이 펄펄 피어오르며 아직도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국밥이 참 맛있었다. 먹성이 좋은 나는 밥을 말아서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먹곤 했다. 항상 뚝배기를 깨끗하게 만들고 나서야 숟가락을 놓았다. 그러느라 밥을 오래 먹는 편이었는데도 동료들은 그런 나를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국밥을 실컷 먹고 나면 어느샌가 몸이 후끈해져 있었다.
어느 무척 추운 날에 일찍 출근한 적도 있었다. 아침 일찍 나온지라 평소보다 더 추웠다. 바람까지 왱왱 불어서 출근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신기한 건 귀가 떨어질 것 같은데도 하늘은 새파랗게 예쁜 날이었다. 아침햇살이 하얗게 비춰 건물들의 유리창이 반짝반짝 빛이 났건만 출근하는 사람은 온몸을 꽁꽁 싸매고도 찬바람을 이기지 못해 덜덜 떨었다. 그렇게 맑고 추운 출근길에 나는 우연히 내 동료인 A를 만났다. A는 나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며 커피를 한 잔 하자고 했다. A는 나에게 따스한 라테를 사주었다. 별다른 용건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A는 라테 한 잔을 사주었다. 덕분에 나는 따스한 라테를 손에 들고 회사 건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별 일은 아니지만 그 아침의 따스한 라테는 정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아침 공복에 마신 따스한 라테는 온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우연한 만남일 뿐이었지만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사람이 살아가는구나'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감사하고 행복했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는 계절이 바뀌어도 큰 변화를 못 느끼고 살고 있다. 추워지면 늘 입고 다니던 잠바도 옷장에 넣어놓았다. 대신 후줄근하게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일을 한다. 집에 있으면 늘 이 차림이다. 계절이 변해도 이 옷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만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날씨가 쌀쌀해졌다는 건 위장이 먼저 알아채는지 따끈한 국밥이 생각난다. 집에서 국밥이 먹고 싶을 때는 주로 배달을 시켜 먹곤 하는데 아무래도 추위에 덜덜 떨다가 먹는 그 맛은 나지 않는다. 뚝배기가 아닌 플라스틱이나 종이 그릇에 포장되어 오니 펄펄 끓는 뜨거운 맛도 없다. 늘 만나는 동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는 대신 유튜브를 틀어놓고 혼자 밥을 먹는다. 그러다 보면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출퇴근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재택근무 건만, 날이 쌀쌀해지니 가끔 동료들과 오밀조밀 몰려다닐 때가 생각이 난다. 코로나가 터진 것은 겨우 1-2년인데도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던 때가 아주 오래된 추억처럼 느껴진다.
이제 동료들과 만나는 것은 주로 화상 회의와 메신저뿐이다. 오다가다 마주칠 일도 없고 함께 커피를 마실 일도 밥을 먹을 일도 없다. 회사를 그만두면 보지 않게 될 인연인데도 그런 온기가 사소하게 그립다. 이럴 때는 비즈니스 관계이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저 그런 만남이 감사하다. 누구라도 내 하루에 소소한 즐거움을 주어서 고맙고 때로는 곤란한 상황에 손을 내밀어주어서 감사하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못된 사람들도 많은데 나에게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무의식적으로 베푼 사소한 친절에 감동을 할 때도 있다.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 아침에 누군가 화사하게 웃으며 인사를 해주면 왠지 힘이 난다.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그 싫은 월요일 아침에도 나를 정말로 반가워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사소하게 감동적이다.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가끔 이런 온기를 느낄 때가 있긴 있다. 최근에는 업무를 하다가 잘 모르는 것이 있어 메신저로 동료 B에게 질문을 했다. B는 친절하게도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설명해주려 했고 화상 회의까지 해가면서 나에게 자세히 알려주었다. 덕분에 업무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떨어져 있어도 동료에게 이런 따스함을 느낄 수 있구나 싶어 잠시 동안 행복했다. 우리는 나중에 커피 한 잔 하자는 약속을 하고 화상 회의를 종료했다. 직접 만날 때와는 달라도 이런 소소한 친절이 참 감사하다.
메신저와 화상으로 밖에 친절을 전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이런 계절에는 그런 온정이 생각나곤 한다. 재택근무가 무척 좋지만 사람이 참 간사하게도 함께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던 때도 그리워진다. 나 자신은 사람들에게 그런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사람들이 나누어주었던 그런 따스한 온기가 하나하나 새삼 생각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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