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차 한 잔을 할 수 있다면
홍차 한 잔을 마시며 10여 년 전을 생각해보았다.
10여 년 전에 나는 홍차를 처음 접했다. 그럴듯한 멋진 동기는 아니었다. 우연히 네이버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티타임 하는 사진을 보았을 뿐이었다. 새하얀 테이블 위에 하얀 찻주전자와 찻잔, 그리고 간단한 다과가 정갈하게 마련된 사진이었다. 붉은빛의 홍차가 새하얀 찻잔에 노란 테두리를 그리며 담겨있었다. 커피를 잠 깨는 약처럼 마셨던 나에게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커피도 정성 들여서 원두를 내려 마실 수는 있다. 직접 원두를 갈아내고 물을 천천히 둥글게 따르며 드립을 할 수도 있다. 정갈한 다과를 준비해서 함께 마실 수도 있지만, 커피를 물약처럼 먹는 나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나는 음료 한 잔을 위해 시간을 쏟고 정성 들여 그것을 음미하는 문화가 낯설었다. 커피는 그저 카페에서 제일 큰 사이즈로 주문해서 그날 할 일을 하며 마셔야 하는 에너지 드링크였다. 게다가 나는 느긋함과는 거리가 먼 급한 성격이었다. 그런 내가 바라보는 티타임은 굉장히 비효율적이면서도 신비한 문화였다. 사람들은 따스한 음료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시간을 들이며 그것을 천천히 음미까지 한단 말인가?
오동통하게 생긴 찻주전자와 다과가 담겨있는 심플하게 생긴 접시, 그리고 찻잔에 오롯이 담긴 홍차는 그런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티타임 정도는 괜찮다고. 너도 그럴 권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신비한 문화에 힘입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홍차를 하나 사보았다. 홈플러스에서 Twinings의 얼그레이 티백을 구입했다. 초보자였기에 찻잎을 우릴 주전자도 없었고 방법도 몰라서 그저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티백을 살포시 올려놓는 것이 전부였다. 그게 나의 첫 홍차였다.
첫 홍차를 마시는 기분이 어떠했는지 기억한다. 따스한 음료를 마셔본 것이 언제였는지를 떠올려보려 했다. 흔히 말하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 나였다. 뜨거운 걸 못 먹나 보다 싶겠지만,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는 이유는 뜨거운 음료를 못 마셔서가 아니었다. 빨리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커피가 적당한 온도로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호로록 마시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아서였다. 커피는 서둘러서 카페인을 보충해주어야 하는 의료품이었다. 그 정도로 급한 성격이다 보니 따스한 음료를 마셔본 적이 거의 없었다.
뜨거운 물에 우러난 홍차는 오랜만에 마셔보는 따뜻한 음료였다. 따뜻한 음료는 여유를 잃지 않게 해 주었다. 마시기 적당한 온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조금씩 천천히 마셔야 하니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되었다. 무엇보다도 손에 쥔 그 따스한 온기가 마치 뜨거운 목욕탕에 온 몸을 담근 것처럼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적당히 식은 차를 호로록 마시면 얼그레이 특유의 향이 조용히 내 입 안에 퍼졌다. 마음이 차분히 놓이고, 침대 맡에 기대고 있는 듯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에는 시간이 될 때마다 새로운 홍차를 찾아보고 돈이 생기면 차를 들여놓았다. 10년 동안 여러 회사의 다양한 홍차들을 마셨고, 중국차까지 찾아서 마셔보았다. 자연스럽게 찻주전자와 찻잔, 차를 우리는 각종 도구들이 생겼다. 이제는 가끔 찻주전자에 뜨거운 물에 붓고 찻잎을 직접 우려 천천히 티타임을 즐기기도 한다. 요즘에는 카페인을 조절하느라 전처럼 많이 마실 수 없어도 차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나의 소소한 취미이자 작은 여유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차보다 커피가 더 많이 팔리는 이유는 내가 커피를 소비하는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차는 아무래도 차가 우러나는 시간을 고려하면 커피만큼 빠르게 마실 수 없다. 게다가 커피는 빠르게 카페인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차는 커피보다 카페인 함량이 낮고 카페인이 작용하는 시간도 그렇게 빠르지 않다. 일이나 공부에 찌들어있는 한국인에게는 그런 차보다는 커피가 더 어울린다. 나도 차보다는 커피를 더 많이 마셨으니 말이다.
모든 집이 찻주전자를 구비하고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사회가 되면 어떨까? 또는 커피를 내릴 때 사용하는 주전자를 구비하고 있어도 멋질 것 같다. 커피도 여유 있게 즐긴다면 사람이 직접 드립을 해주는 느린 과정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날이 오기는 요원하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여유 있는 사회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하루에 차 한 잔 정도 천천히 우릴 수 있을 만큼 따뜻하고 관용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Photo by Sixteen Miles Out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