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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Feb 03. 2022

적당하다는 말은

적당히 살자

적당하다.

1. 들어맞거나 어울리도록 알맞다.
2. 대충 통할 수 있을 만큼만 요령이 있다.

적당한 온도, 적당한 습도, 적당한 크기. 다양한 말에 쓰이지만, 적당하다는 말은 약간의 게으름을 허용한다. "대충 통할 수 있을 만큼만 요령이 있다"니, 그야말로 게으른 말이다. 하긴 그렇다. 우리는 적당한 온도의 커피를 마시지, 정확한 온도의 커피를 마시지는 않는다. 커피 한 잔을 마시자고 정확한 온도를 측정하지는 않는다. 대충 입 안이 따스해질 정도로만 식으면 커피를 마신다. 이렇듯 적당하다는 말은 게으른 말이다.


그렇다고 적당하기가 쉬운 일도 아니다. "소금을 적당히 넣어주세요." 같은 말은 갈피를 못 잡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건가. 적당하다는 말의 게으름은 사람을 혼돈에 빠뜨리곤 한다. 정확한 양을 제시하지는 않으면서 목표에는 부합해야한다니 어딘가 이중적이다. 이 이중성은 "적당한" 인간관계를 맺기 어렵게 만든다. 다른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농담은 적당히 예의를 지켜야 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무언가를 적당히 유지하기란 힘이 든다.


하지만 나는 게으르면서도 힘든 이 말을 좋아한다. 적당하다는 말의 모호한 범위를 좋아한다. 적당하다는 말은 모자라지 않되 넘치지 않는 유연한 범위를 품고 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가 생명체를 끌어안듯이 무언가를 보호해주는 느낌이 있어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적당히가 허용되지 않을 때가 있다. 시험 점수나 돈은 많을 수록 좋다. 시험 점수나 돈이 넘쳐서 곤란한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시험 점수나 돈에게 진정한 의미의 '적당히'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적당한 선이 없는 말들은 사람을 성마르게 만든다. 적당하다는 말이 존재할 때 사람은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적당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삶을 포용할 수 있다. 마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커피 온도가 그러하듯이 삶도 쾌적해질 수 있다.


삶에도 이런 적당한 범위를 만들어주는 건 어떨까. 너무 열심히 사는 삶은 사람을 고갈시킨다. 삶의 의미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나아가는 것에만 몰두하게 만든다. 반면에 적당한 삶은 사람을 고갈시키지도 않고 삶의 의미도 찾게 해준다.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를 보게 해준다. 적당하다는 말이 갖고 있는 게으름이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열심히 살기보다는 적당히 사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인생에 도달하기가 더 쉬워보인다.


그러니 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면 한 번쯤은 자신에게 말해보자.

수고했다고. 이제 적당히 해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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