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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Feb 17. 2022

이제 손톱을 깎을 수 있다

응어리진 불안이 녹기 시작했다

손톱을 깎았다.

징그러울 만큼 손톱이 길게 자라 있었다. 열 손가락이 모두 걸리적거릴 정도였다. 나는 흐뭇한 기분으로 손톱을 깎았다. 이번에도 손톱을 깎을 수 있다는 뿌듯함이 나를 덮쳐왔다.


손톱 깎는 일이 뿌듯할 일이냐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무척 뿌듯한 일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손톱을 물어뜯었기 때문이다. 서른 살이 넘도록 손톱 한 번 깎을 일 없이 심하게 물어뜯었다. 손톱 밑의 살점이 드러나고 때로는 피가 나더라도 물어뜯었다. 손가락이 엉망이 되도록 물어뜯어도 나는 그 버릇을 고칠 수 없었다.


언제부터 손톱을 물어뜯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주 어릴 때부터 물어뜯기 시작한 건 분명하다.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원인은 분명했다. 정서불안이었다. 내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내가 중학교 때 이혼하셨다. 그 과정은 무척 순탄치 않았고 나는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보려고 애를 썼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친구들에게 센 척을 하며 괜찮은 듯이 살아냈다. 하지만 그렇게 의젓하게 살아낸 대가는 내 손가락에 그대로 남아버렸다.


어른이 되어도 이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이 어려움을 이겨내야지' 하고 만화 주인공처럼 억지로 다잡았던 마음은 어른이 된 나에게도 습관처럼 남아버렸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부족한 애정은 어른이 되었다고 저절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끝없이 인정을 갈구했고 불안감을 느꼈다. 조금만 긴장을 하거나 집중을 하면 손이 바로 입으로 갔다. 의식적으로 하는 일이 아닌지라 어떻게 고치려고 해도 고쳐지지가 않았다.


주변에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고친 사람에게 어떻게 고쳤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그냥 물어뜯지 않겠다고 생각하니까 고쳐졌다"라고 했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투명 매니큐어를 발랐다"라고 했다. 나도 해보려고 매니큐어를 발라보았으나 매니큐어가 발린 손톱을 먹어버린 이후로 그 방법을 쓰지 않았다. 의식하기도 전에 손톱을 물어뜯어버리니 도저히 의지만으로는 고칠 수 없었다.


자라면서 나는 예쁘지 않은 내 손톱을 볼 때마다 절망했다. 단순히 예쁘지 않은 모양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치유할 수 없는 불안과 우울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 버렸다. 어릴 적에 겪었던 일들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큰 상처였다. 나는 내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어쩌면 영원히 고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내 삶의 상처가 아주 오랫동안 깊이 남아있었고 또 앞으로도 낫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손톱을 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고친 건 불안과 우울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였다. 나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병원에 가야 했고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했다. 손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나는 상담을 받으면서 점차 나아졌다. 나는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내 불안의 원인을 이해하자 차차 마음이 안정되어 갔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주는 항불안제도 도움이 되었다. 마음이 조금씩 건강을 되찾자 내 의지가 습관을 이겨내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면 손톱을 이미 물어뜯고 있던 이전과 달리 "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니까 손이 입 근처로 가지 않았다. 마치 꽝꽝 얼었던 눈이 봄 햇살에 녹아버리듯이 갑자기 일어난 변화였다.


나는 평생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너무 신기해서 손톱을 멋대로 길러 보았다. 손톱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서툴게 손톱깎이를 사용해보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진작 정신과를 찾았다면 나았을지도 모르는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해온 것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종종 손톱을 깎는다. 아직 긴 손톱이 신기한 탓에 멋대로 길러서 부러지기도 하지만, 아무튼 정기적으로 손톱을 깎고 있다. 그래도 오랫동안 손톱을 물어뜯은 탓에 모양이 완전히 예쁘지는 않다. 어딘가 삐뚤어져 있는 듯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종종 조금 더 잘하지 않으면 안 되고, 조금 더 특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몰아쳤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렇게 힘들었던 시절을 지나왔다는 것에 안도감도 들고 뭉클한 기분도 든다.


지금은 손가락 끝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시달렸던 그 시절의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 못 일어설 만큼 힘들어도 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또 지나가는 날도 온다고 말해주고 싶다. 힘든 시기를 견디느라 수고가 많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제는 불안도 슬픔도 다 지나간 일이다. 앞으로도 손톱을 깎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후련한 기분을 느끼며 오늘 손톱을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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