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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과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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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Jan 08. 2022

동네 서점에는 인연 있는 책이 있다

책과 사람의 인연

<헌책방 기담 수집가>라는 책이 있다.

헌책방 주인이 이제 구할 수 없는 절판된 책을 찾아주는 대신, 그 보수로 책을 찾는 사연을 들려달라 하는 내용이다. 최근에 나온 책인데 무척 재미있다. 책에 얽힌 기이한 사연들도 등장하고, 책을 찾는 과정도 무척 다이내믹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말도 안 되는 의뢰를 하기도 하고, 책을 찾는 것을 도와주기도 한다. 마치 모험 같은 이야기 속에서 책의 주인공인 헌책방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구할 수 없는 책이라도 인연이 닿아 있으면 책이 스스로 나타난다고. 다소 비과학적인 이야기지만 책을 쓴 작가는 그 말을 믿는다. 책에도 인연이 있다는 말을. 


나 역시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어렴풋이 책이 말하는 인연을 느끼곤 한다. 수없이 많은 책들 사이에서도 나를 끌어당기는 책이 있다. 마치 만날 운명이었다는 듯이. 온라인 서점이 무척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 돌아다니는 이유는 그런 이유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우연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책과의 만남이 있다.


오프라인 서점 중에서도 동네 서점은 인연이 있는 책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베스트셀러를 좌르륵 늘어놓는 대신 주인장이 책을 직접 선별하고 골라서 전시해놓기 때문이다. 그만큼 주인장의 안목이 고른 좋은 책들이 많이 진열되어있다. 게다가 대형 서점만큼 넓은 공간은 아니어서 꼼꼼히 서가를 들여다보기도 좋다. 서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끔 인연이 닿은 책을 만날 수 있다.


지금 내 책장에는 <에도의 독서회>와 <어느 독일인의 삶>이라는 책이 있다. 동네 서점에서 고른 책들은 많이 있지만, 이 두 책만큼은 인연이 닿아서 구입한 책이다. 특별한 사연은 아니지만 단지 우연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껴 구입했다. 그만큼 굉장히 뜻깊게 읽기도 했고 내 취향에도 잘 맞았다. 이 두 책만큼은 지금도 그때의 느낌이 기억날 정도로 강한 인연을 느꼈다.






그날은 봄비가 오다 그친 맑은 날이었다. 

나는 쉬는 날 가끔 근처에 동네 서점이 있는지 찾아보고 들르곤 한다. 그날도 근처에 동네 서점이 있는지 검색을 해보고 찾아가 보았다. 꽃이 핀 거리를 지나 골목을 건너 건너 찾아가 보니 작고 예쁜 서점이 하나 들어서 있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유리문을 열고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꾸며진 서점에는 귀여운 소품들이 있었고 책을 읽다 갈 수 있는 테이블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동네 서점 치고는 책이 아주 많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종종 작은 서점에 들어가 보면 문화 공간이 책이 차지하는 자리보다 넓어서 아쉽곤 했는데 그 서점에는 책이 잔뜩 있어 무척 흥분되었다.


게다가 서점 주인장의 안목이 나에게 꼭 맞았다. 자기 계발서보다는 사회과학서나 예술, 역사에 관한 책이 많이 놓여있었고, 책장 하나에는 과학 교양서도 꽂혀있었다. 깔끔하고 멋진 인테리어에 가득한 책, 그리고 수준 높은 안목이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었다. 그날의 서점 투어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이 공간이 오래오래 유지되길 바라며 내가 구입할 책을 골랐다. 책은 아주 많았지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었다.


사고 싶은 책도 많고 좋은 책도 많이 있었다. 마음은 이 책 저 책 마구 담아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서가를 돌아다니며 꼼꼼히 살만한 책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에도의 독서회>를 발견했다. 일본과 독서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그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어딘가 살짝 밋밋한 표지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지 않을 것 같은 주제의 책이었다. 다른 서점에 가면 꽂혀있을 리가 없어서 지금 지나치면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밖에 만날 수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재빠르게 꺼내어 훑어보았다. 대충 보았을 뿐이지만 내용도 훌륭했다.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어느 독일인의 삶>은 매대에 나와있었다. 판형이 작아 한 손에 들기 편한 책이었다. 흑백의 디자인이 어딘가 고혹적인 느낌마저 드는 책이어서 언뜻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자연스럽게 손이 갔고 나는 표지를 살펴보았다. 이전에 브런치에서도 소개했지만, 나치의 수장 중 하나인 괴벨스의 비서의 이야기였다. 비서로서, 그리고 독일인으로서 나치 밑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저자의 삶이 무척 궁금해졌다. 게다가 마음에 큰 울림을 줄 것만 같은 느낌에 망설이지 않았다. 왜 이런 책이 입소문을 타지 않고 이런 서점에 조용히 진열되어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곳을 떠나면 마찬가지로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게 뻔했다. 소장을 해야만 하는 책이었다. 나는 그렇게 두 책을 골라왔다.






그 후로 2년이 지났는데도 그 책들을 발견했을 때의 강렬한 느낌이 잊히지 않는다. 그 책들은 그 서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과연 그 책들을 전시해놓은 다른 서점을 찾을 수 있었을까? 대형 서점의 서가에 꽂혀있었던들 내가 그 책들을 찾을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그 서점 주인장의 안목만이 그 책들을 눈에 띄게 전시해놓을 수 있었다. 그 책들은 그때 그 서점에서밖에 살 수 없는 책이었다. 


동네 서점은 그런 책들을 살 수 있다. 주인장이 골라 놓은 안목 있는 책, 그리고 그 시간, 그 순간, 그 공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책 말이다. 인연이 닿아야만 만날 수 있는 책이란 그런 책인 것 같다. 실제로도 좋은 인연이었다. <에도의 독서회>와 <어느 독일인의 삶> 두 책 모두 밑줄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고 지금도 소중히 소장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책을 많이 구입하긴 하지만 일부러 동네 서점에 가는 건 이런 이유이다. 내게 인연이 닿아있는 좋은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이다. 작은 책방이라도 꼼꼼히 살펴보면 살만한 책을 발견할 수 있다. 독서에 내공이 좀 쌓이면 좋은 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내 능력을 시험해보기도 할 겸, 좋은 책을 만나 인연을 맺을 겸 동네 서점에 간다. 그러니 여건이 된다면 함께 동네 서점을 찾아보자.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인연을 맺으러.



그날 들른 서점에서 찍은 사진들


제목 이미지 : Photo by Clay Bank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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