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사람의 소망
낮은 겨울 구름을 뚫고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 때문에 시끌벅적하지도 않은 연말이었다. 새해는 코로나가 물러나고 다시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게 된다. 방 안에서 책만 읽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밖에 나가서 어딘가 구경이라도 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 읽는 사람의 연초는 딱히 특별할 것 없이 조용하다. 항상 그랬듯이 책을 한 곳에 쌓아두고 그저 책을 읽거나 연필로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이렇게 글을 쓰면서 연초를 보낸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다. 다만 새해 기분을 내어보려고 새 책을 좀 들여놓았을 뿐이다. 새해에는 미뤄둔 벽돌 책도 좀 읽어야지 하고 다짐도 해본다. 언젠가 읽을 거라고 벼르고 있던 책들도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새 책을 들인 지 얼마 안 되었으면서 벌써 장바구니가 끝도 없이 차오른다. 나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아서 조용히 장바구니를 바라보며 혼자 웃는다.
새하얗게 쌓인 새 책들이 책상 한 귀퉁이에 작은 탑이 되어 있다. 중고등학생 때가 떠오른다. 새해가 시작할 때나 새 학기가 시작할 때 나는 문제집을 잔뜩 사놓곤 했다. 그렇게 잔뜩 사놓은 것만으로도 공부를 잘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장 한 귀퉁이에 과목별로 사놓은 문제집을 잔뜩 꽂아놓고 문제집의 빳빳한 책등을 보고 있으면 정말 뿌듯했다. 그때만큼은 얼마나 공부를 하고 싶은 의욕이 가득했는지, 문제집을 어서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싶어서 진도가 빨리 나갔으면 했다. 그때부터 책이 잔뜩 쌓여있는 풍경을 아주 좋아했던 것 같다.
오늘 쌓여있는 책은 이렇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강유원 박사의 <책 읽기의 끝과 시작>, 펭귄 클래식에서 나온 <1984> 등이다. <1984>를 아직 안 읽었냐고? 아직 안 읽었다. <동물 농장>은 읽었지만 <1984>는 아직 읽지 않았다. 그래서 주황색의 예쁜 표지로 나온 펭귄 클래식 책을 샀다. 어떤 사람은 <1984>가 미친 책이라며 극찬을 하던데, 아주 기대가 크다. 다만 책 탑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 권씩 읽는 강박증이 있어 <1984>는 며칠 걸려야 읽을 것이다.
올해의 독서도 아마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 같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책상 한 귀퉁이의 새하얀 작은 탑을 한 층 씩 빼내거니 쌓거니하며 조용히 흘려보낼 것 같다. 코로나가 사라져 세상이 시끌벅적해져도 내 책상 위만큼은 조용히 종이 한 장씩 넘기며 지나갈 것이다. 몇 년이 되더라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습관이다. 별 것 아니어도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한 해가 되고 행복한 세월이 될 것 같다.
새로운 한 해가 밝았어도 나의 바람은 변함이 없다. 그저 올 한 해도 책 살 돈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걱정없이 책 읽고 글 쓸 시간이 많기를 바란다. 좀 더 바랄 수 있다면 코로나 시대가 끝나 책 관련 행사에 가보고 싶다. 서울국제도서전이나, 민음사 패밀리데이 같이 큰 행사에 가보는 것이 작은 소원이다. 그 외에는 아무래도 좋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을 잔잔히 틀어놓고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따뜻한 방 안에 있을 수 있다면,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새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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