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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과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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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Mar 20. 2022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할까

독서는 즐거워야 한다

최근에 어려운 책을 한 권 읽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이다. 소설이기에 사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웬걸 첫 장부터 숨이 턱턱 막혔다. 초반에는 "이거 왜 이렇게 어려워?"하고 깜짝 놀라며 페이지 수를 세기 일쑤였다. 문체 자체도 어려웠고 문학적으로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첫 단편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를 읽고 보르헤스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난해하다는 이야기들이 꽤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고 안도를 한 다음, 원래 이런 책이라는 것을 깨닫고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한 편 한 편이 모두 고비였다. 읽는 동안 그만 읽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단편 소설 모음집이 아니라, 장편 소설이었다면 아마도 포기하고 그만 읽었을 것이다.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얻은 소득은 제법 있었다. 보르헤스의 환상 문학이라는 게 어떤 건지를 접했고, 읽으면서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풍부한 상상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가히 충격적일만큼 굉장한 세계를 탐험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어려워서 쩔쩔맸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놀라움을 체험하는 재미가 붙어 점점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검색해보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보르헤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럴만 하다고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놀라운 작품들이었다.


독서를 어느 정도 하다보면 이렇게 어려운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보르헤스는 그래도 얇은 책이니 양반이지, 어렵고 두꺼운 책들을 마주치면 정말 괴롭다. 나는 독서에 내공이 깊지 않은 탓에 어려운 책을 만날 때마다 고생을 하는 편이다. 그래도 어려운 책은 보르헤스처럼 남는 것이 많을 때가 있다. 읽어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어려운 만큼 멋진 세계를 보여준다.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시야도 넓어지게 되는 건 물론이다. 


그렇게 좋은 점만 있다면 항상 어려운 책만 읽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얻는 게 많은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워 오래 지속할 취미는 못 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취미로서의 독서는 즐거워야 한다. 나는 내 수준에 맞는 가벼운 책들을 읽으면서 책장을 술술 넘겨주어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즐거움도 느낀다. 늘상 어려운 책만 읽으면 아무래도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고 괴로울 것 같다. 내게 맞는 책을 읽어야 책이 친근해지고 손에 들었을 때 행복해진다. 이렇게 독서가 즐겁고 행복해야 책과 오래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어서 내공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어려운 책에 손이 가게 된다. 읽고 있는 책의 수준도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그러니 평소에는 내 수준에 맞는 책을 읽고 가끔씩만 어려운 책을 읽으며 천천히 내공을 쌓는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다보면 욕심이 나서 공연히 너무 어려운 책에 도전을 하곤 한다. 도전 자체는 좋지만 독서를 포기할만큼 무리해서는 안 된다. 연초에 초심자들이 유발 하라리의 책이나 <총, 균, 쇠> 등을 읽고 지레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은 초심자일수록 즐겁게 읽는 것이 좋다. 책을 읽는 습관이 붙기도 전에 책을 읽는 것이 괴로워지면 쉽게 포기하게 되니까 말이다.


쉬운 책이라고 딱히 나쁜 것도 아니다. 헤밍웨이처럼 쉬운 문체를 구사하면서도 위대한 작품을 써내는 작가도 있다. 다만 수준에 관계없이 더 많은 세계를 접하기 위해 어려운 책을 가끔 읽는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점점 수준이 높아질수록 읽을 수 있는 책도 많아질테니까. 공연히 어려운 책을 집어들고 좌절하지도 말자. 그저 지금은 읽기 어려운 책일 뿐이다. 도전할 준비가 되었을 때 도전하면 된다. 그 때까지는 서서히 내공을 쌓는다고 생각하자.


어려운 책은 지적 도전을 해보고 싶을 때 좋은 목표가 되어준다. 뜻밖의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고 큰 깨달음을 던져주기도 한다. 하지만 초심자가 처음부터 높은 산을 오를 수는 없다. 등산을 즐기기 위해서는 자기 수준에 맞는 산을 올라야 하듯이 책도 마찬가지다. 독서를 즐기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맞는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다가 여유도 있고 도전도 해보고 싶을 때 좀 더 어려운 책을 손에 들어보자. 고생은 하겠지만 평소와 다른 풍경도 보고 뿌듯함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Photo by Olia Gozh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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