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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Apr 06. 2022

봄밤에 읽는 책

봄은 문학이 어울린다

봄에는 퇴근이 너무 하고 싶다.

딱히 봄만 그런 건 아니지만, 밖에 꽃이 잔뜩 피어있는 걸 보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걷고 싶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 그대로 회사를 떠나고 싶다. 현실은 창문 밖을 가만히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있는 게 전부 건만, 참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책도 그렇다. 봄에는 집에 있기보다는 밖에 나가고 싶다. 집 안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기에는 좀이 쑤신다. 모름지기 봄은 밖에 나가야 한다.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고 봄꽃을 보며 아지랑이 속으로 자꾸만 걸어 들어가야 한다. 봄은 그래서 책과 먼 계절이다.


그나마 책을 읽게 되는 이유는 봄에도 해가 지기 때문이다. 봄을 완연히 즐기다가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그제야 책을 읽는다. 한껏 봄을 만끽한 하루라도, 또는 종일 일만 했던 하루라도 밤이 되면 집에 들어와 책을 꺼낸다. 겨울보다는 책 읽는 시간이 줄긴 했어도 집에서 달리 할 일은 없어 책을 읽는다. 


봄밤에 어울리는 책은 문학이다. 어쩐지 가벼운 소설이나 짧은 에세이가 생각난다. SF 소설이 되었든 고전이 되었든 상관없이 문학을 읽고 싶어진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잠시 따스한 날씨에 낮잠을 자는 듯한 책을 읽고 싶어진다. 따스한 봄꿈처럼 아름다운 글과 환상들을 손에 들게 된다.






최근에는 <디 에센셜: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읽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책인데 헤밍웨이의 단편과 <노인과 바다>가 수록되어 있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같은 무거운 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단편들은 내용이 무겁지 않다. 게다가 헤밍웨이의 문체는 그야말로 짧고 쉬워서 봄에 가볍게 읽기에 좋다.


대표적으로 <노인과 바다>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생명력이 느껴지면서도 역동적인 작품이라 봄밤에 흥미진진하게 읽기에 제격이었다. <빗속의 고양이>처럼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도 있었다. 어려운 문장 없이 책장이 휙휙 잘 넘어가서 더욱 좋았다. 


소설 말고도 읽은 에세이가 있다. 요조 작가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도 가볍게 잘 읽혔다. 읽으면 나름대로 맛이 느껴지는 문장에, 제주를 오고 가며 쓴 제주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었다. 그 밖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에세이였다. 정말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글이 참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요조 작가의 담담하면서도 맛깔난 표현들은 무언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나 김초엽 작가의 소설 같은 SF도 읽는 맛이 있었다. 그야말로 또 다른 세상에 푹 빠져들어서 이런저런 간접 체험을 해보는 것이 즐거웠다. 이런 책들은 어떻게 시간이 지나는지 모르게 읽곤 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어울린다. 마치 날씨 좋은 날 한밤중에 자동차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밤 시간이 즐거워지는 방법 중 하나였다.






봄밤에는 문학이 어울린다. 봄밤에 잠깐 읽기에는 가벼운 문학이 더욱 어울린다. 묵직한 문학들도 나름대로 멋진 점이 많지만, 나는 낮에 한창 밖에서 놀다가 밤에 무거운 책을 읽으면 지친다. 그저 그냥 잠들기는 아쉬울 정도로 즐거운 날, 자기 전에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책이 좋다.


낮에는 날씨와 봄꽃을 즐기고 밤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깊이 빠져보는 것도 나름대로 봄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봄은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봄밤도 현실이 아닌 듯한 세계에 빠져들고 싶은지도 모른다. 현실인 듯 아닌 듯한 소설이 읽고 싶고, 아름다운 글귀로 적힌 짧은 에세이가 읽고 싶다. 봄밤에는 책을 읽는다. 문학을, 어여쁜 단어들을, 축제처럼 즐거운 환상들을 읽는다.


Photo by Arno Smi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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