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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pr 17. 2021

나는 일 만드는 사람이다

나는 일 만드는 사람이다.


직장을 그만둔 지는 1년 10개월째 흐르고 있지만. 처음으로 출근하는 일이 없어졌을 땐 자타 백수로 여겼다. (부모님은 아직도 백수 백수 한다.) 출근이 내가 일해온 시간에서 그만큼 큰 비중이었던 거다. 그렇지만 나는 고정적으로 맡는 가사노동과 (코로나19 이후로는 싹 없어졌으나) 드문드문 구할 수 있는 벌이가 있었고, 백수의 사전적 의미는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이다.


퇴사 전부터 하던 일을 계속한다. 사업자 등록증도 갖고 있다. 프로젝트 단위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면서 간혹 글 쓸 자리를 얻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자 생활과 병행하던 때보다 필연적으로 콘텐츠 노동 양이 줄었다. 그것도 확. 그 결핍을 '남다른 기획 의지와 돌파력'으로 메꿔 가야 했다는 당연한 진실을 이제야 뼈저리게 체감했지만, 당시엔 어떻게든 없어진 수입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만 강했다. 강박은 결코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아 헤매는 게 일이었다. 그리고 가사노동, 나 말고는 누구도 알아서 돌보지 않는 '집안의 일'들을 하느라 일의 시간을 상당 부분 썼다. 지금의 나는 '살림의 왕'이다.


굴렁쇠, by 유성락 https://www.flickr.com/photos/cc_photoshare/11027456284


언제부턴가 '일과 나'의 관계를 재정의할 필요가 생겼다.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반복해서 묻는 고민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가 곧 자기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일이란 개인에게 그런 의미로써 제일 크게 작용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재삼 발견했다. 누군가 내 일을 물으면 (여전히 노동인구의 상당수가 직장생활을 하는 일의 구조적 환경에서 그가 듣고 싶어 할 거라고 내가 여기는 직업적) 한 단어로 말하기 편치 않았던 이유도 컸지만 말이다. 어쩌다 보니 그 질문에도 대처할 수 있는 단어를 만들어 놓았으나,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 


일의 '편성'은 한 가지만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직장 생활을 때와는 많이 달라지고 수입 문제도 생겼다. '백수는 아닌데..., 그런데?' 같은 생각이 자주 나를 괴롭혔던 건, 백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벌이로서 충분하지 않아 진 일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데 불안이 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살면서 이런 고민을 하는 인구가 부쩍 증가하는 상황이 왔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직업'이라는 단순하고 다소 과거적 개념과 불화하는 일은 끊임없이 있었다. 소속 없이 일하는 개인을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프리랜서에게 일과 돈이 반드시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그 부류에 속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계약 상태가 길어지고, 그럼에도 계약과 계약 사이에 탄생시킬 일들을 꾸리고 만들 사람이 나다. 없지만 '있게 하는' 일을 하면서, 나는 '직업'을 떠올리면 계속 혼란스럽곤 했다. 백수는 아니지만 백수인 시간을 보낸다. 조직원은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날에도 백수가 아니지만, 비조직원은 그런 시간에 백수가 되니까.


결국 스스로를 일 만드는 사람(?), 만들어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이름하고, 아무튼, 더 이상 스스로를 백수로 여기거나 말하지 않는다. 직업이라면 잘 모르겠지만 내가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여전히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 나에겐 자꾸만 되돌아오는 물음이자,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자의 움직임을 유발하는 원천이다. 그 이야기를 굳이 글로 정리해본다. 어쩌면 지금 나와 같은 사람들, 그렇지만 서로 다른 욕망과 연결된 각각의 사회적 반응의 과정일 것이 분명한 이들의 면면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기획과 동시에 일단(?) 스타트부터 끊었다. 한 번 획득한 살림의 왕 자리에서는 서서히 다시 내려가고 있고, 지금 하는 일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어느 쪽이든 디테일이 생명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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