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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May 12. 2021

아침 러닝을 시작했다

아침 러닝을 시작했다.


이 글을 쓰는 오늘로부터 3개월 전에 달리기를 소재로 한 에세이 한 편을 읽던 중 결정해 버렸다.


"잘 혼자가 되려고 달리기를 해왔다. 글쓰기나 달리기나 누가 대신해줄 수 없다는 점이 비슷했다. 슬픔을 길 위에 버려가며 달렸던 날에는 몸에 있던 독기가 빠지는 것 같았다. 달리는 건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영역이었다."
- 말보다 앞서는 몸, 이슬아


3개월 전 내 일터는 집이었다. 홈오피스. 각종 일터이자 생활 반경의 전부인 곳. 일부러 박차듯 나가지 않으면 거의 집에 갇힌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잠자는 방에서 나와서 싸고 씻는 데 들렀다가 먹는 곳을 통과하여 일하는 방으로 몸만 옮기는 움직임의 중복이 단절 없는 타임라인으로 이루어졌다. 홈오피스에서 두 번째 해가 바뀌는 동안 마치 나만의 공간인 것처럼 내가 가장 많이 관리하는 그 이유로 시시때때로 내가 가장 많이 침범당한다는 사실을 체감하던 중이었다. 살림의 왕은 ‘더 킹’이 아니었다.


'이러려고 회사 밖으로 일을 가지고 나온 건 아닌데….' '작년에 겨우 <삼> 3호 만든 게 기록된 일의 전분데, 여전히 기획뿐인 일로 올해도 1분기가 지나가네….' '아무것도 못 남기고 다시 누구와도 새로 연결되지 못하고 해가 지나 버리면 어떡하지….'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과 불안이 한 번 밀려들기 시작하면 읽기 시작한 책의 한 챕터조차 마무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신이 산만해지다가, 한없이 기분이 다운되다가, 몸이 늘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남은 시간들을 날릴 순 없어서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뭐라도 넣어야 무언가가 나올 거 같아서 내 안에 넷플릭스를 너무 많이 넣다가 두통과 안구통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날도 여러 번 있었다. 웃픈 날들의 연속이었고, 걱정은 시간을 먹으면서 불어나고, 몸도 자꾸만 무거워졌다. 환기가 필요했다.


"나 월 수 금 5km씩 뛸래."


동거인에게 메신저로 선언했다.


"역시 아침에 뛰는 게 좋을 텐데, 막 텔레비전에 나오는 부지런한 사람들처럼 6시에 뛰는 건 아무래도 무리야. 전날 6시부터 자면 모를까."


오전 6시는 아침에 뛴다고 생각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보통 직장인'의 삶은 7시에 시작된다는 걸 마치 '외우고' 있던 것처럼. 그들이 아침 러닝을 하려면 한 시간을 당겨서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계산이 됐다. 그렇지만 나는 그 어떤 직장인도 아닌 채로 두 번째 해를 맞았고, 원래도 '보통 직장인'은 아니었다. 내가 직전에 다닌 잡지사 출근 시간은 10시였다. 7년을 그랬으니까 7시 기상 패턴은 나에겐 까마득한 과거이거나, 외근 혹은 지방 출장 일정이 있을 때 벌어지던 예외 상황이었다. 에세이를 읽다가 불현듯 바꾸어 잘 통제하고 싶은 건 나의 일상 영역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주 3회여도 나와 별 상관도 없는 오전 6시 기상을 할 이유는 없었다.


"일 화 목은 밤 11시에 자고 다음날 7시에 일어나서 뛰어야겠다. 난 오늘 11시에 자기 위한 삶을 만들게."


대구는 없었지만 언제나처럼 (대상은 있어야 하니까) 동거인에다 대고 알아서 척척 선언하고 나니 우울하던 마음이 벌써 개선되고 있었다. (<삼>을 만든다는 계획도 지금의 동거인에다 대고 제일 먼저 말했던 거 같다.) 빨리, 몸뚱이로 당장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다. 그렇게 몸에 쌓는 독기와 불안은 털어내면서, 몇 달 전부터 머릿속으로 기획만 굴리고 정작 시작은 하나도 안 한 몇 개의 발행 계획 중에 한 두 개 정도는 to do list에서 지워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았고, 계획대로 대략 11시부터 잠자리에 누웠다. 습관보다 일찍 잠드는 것부터 쉽지 않아서 결국 자정을 훨씬 넘겨서 수면 상태로 들어갔지만, 다행히 오전 7시에 들리는 알림을 무시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불행히도 이 부분을 쓰고 있는 시간은 1:11a.m.이다.)


러닝은 처음이었다.


러닝, 그러니까 달리기를 여태껏 해보지 않은 건 딱히 그에 관한 좋은 경험이 아직 풍부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나의 달리기를 떠올리면 초·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체육 시간마다 건조한 모래 바람이 날리는 운동장을 억지로 두 바퀴씩 뛰면서 가능하면 무조건 피하고 싶었던 기억, 체력장 시즌이면 짧게 달리기 100m 종목이든 오래 달리기 1000m 종목이든 언제나 가장 오래 달리는(?) 부류의 끄트머리 기록을 남긴 일들, 왜 때문인지 모르지만 중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상암 월드컵 공원에서 열렸던 5km 마라톤 행사에 참가했던 날 남긴 한 장의 사진이 생각날 뿐이다. 하지만 남들이 즐기는 달리기를 멀찍이서 구경한 시간들은 쌓여서 서서히,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달리기라는 활동이 긍정적 이미지로 바뀌어 축적된 게 틀림없다.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는 내 '피곤한 마음'에 날아온 홍삼 진액과 같은 접촉이었던걸까. 아무튼 트리거였다.


구경하는 달리기를 떠올리면 이런 기억이 났다. 학부 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처음 멀리 떠난 유럽 배낭여행 첫날의 일이다. 출발지였던 런던에 한밤 중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4인실 게스트하우스 4층까지 15킬로그램짜리 캐리어를 질질 끌고 올라갔다. 짧고 강렬했던 노동으로 얻은 이곳저곳의 관절염과 허리 통증은 강렬했고, 장기 비행이 악화시킨 증상과 이방인으로서의 긴장까지 더해져서인지 몇 시간 못 자고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거의 못 잔 상태지만 (20대 초중반의 몸이고) 여행 냄새가 났고, 한국에서는 못 맞아 본 기상 타이밍이었기에 2층 침대에서 기어 내려와서 씻지도 않고 동네 구경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찍부터 혼자서 걸어 다니다 보면 부지런하게도 이리저리 달리는 그 동네 서양 여자 남자들을 왔다 갔다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었다. 뚜벅이로 여행한 시간이 대부분이다 보니 저녁 강변길과 골목에서도 역시 그 동네 서양 여자 남자들을 마주하기 일쑤였다. 이어폰을 꼽고 제법 빠르게 달리는 그들의 몸은 생동감이 있고, 과하지 않게 허벅지와 팔뚝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잔잔한 근육 모양이 약간의 땀을 덧입으면 더욱 윤이 나 보였다. 서울에서 내가 흔히 접하던 광경이 아니라서 매우 '이국적'으로 다가오는 그 건강해 보이는 여자와 남자들의 모습과, 근육이라곤 잘 안 보이는 내 몸뚱이의 습관과 비교했었다. 돌아보면, 최고로 인기 있는 공중파 텔레비전 드라마의 시청률이 40% 정도는 넘기던 시절의 한국에서도, 젊고 부자인데 잘생기기까지 하며 주로 남자인 대기업 실장 혹은 본부장급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이 일찍이 아침 한강 변을 달리는 모습을 간혹 보여줬던 거 같다. 아무튼 10년 전에 구경한 외국 사람들의 멋지고 돈도 안 들어 보이는 건강한 일상은 처음엔 기분 좋은 신선함으로 다가오다가 볼수록 따라 하면 좋을 활동으로 기억 속에 남은 게 분명하다. 어느 때부턴가는 서울, 한국사회에서도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려는 체육인 같은 아저씨들이 아니더라도 여자다 남자다 할 것 없이 대기오염도 불사하고 도심이나 한강 변을 달리는 젊은 사람들의 활력 있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 글을 쓰면서는 문득 10년 동안 한 번도 따라 해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의아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뛰기 시작했다. 언젠가 러닝에 대한 일련의 이미지 탈바꿈이 벌어진 후, 달리기와 러닝이라는 말을 거의 반반 혼용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진 어느 시절에, 남의 달리기 이야기를 읽은 다음날로부터. 몸짓'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자의 움직임을 알아서 꾸준히 유발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여러모로 건강해져서, 반드시 전날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쪽으로 나를 움직이고, 더 효율적으로 일감을 꿰려는 희망찬 연초의 계획이었다.


2월 3일 수요일 오전 7시 15분. 처음 뛴 날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을 찾아보았다. 하필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혹한의 날, 계속 대고 맡고 싶은 내 쿰쿰하지만 고소한 베개와 이불취 사이에서 나는 힘겹게 떨어져 나왔다. 안구가 많이 건조한 편이어서 거의 감은 채 조심조심 열 걸음 정도를 옮겨 세면대 앞에 서서 양치만 하고 나갈 채비를 하던 어리버리한 모습을 기억한다. 털모자를 썼고, 후리스 상의를 입은 위에 더 두꺼운 후리스 웃옷을 겹쳐 입었다. 가진 것 중 '길성비(길이 대비 성능)'가 가장 좋은 목도리도 감았고, 후덜 거리는 살들을 잡아줄 레깅스에 아랫도리를 끼웠다. 그러면 탄력감을 느끼며 내달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두꺼운 양말에 러닝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예상보다 추위가 덜 느껴지길래 전날 짱짱하게 보일러를 올리고 잠에 들길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집 앞에서부터 워밍업을 시작했다. 한강 변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위해서 제자리 뛰기를 하며 출발했다. 그리고 리듬감 있게 발을 떼자마자 하지만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귀가 떨어져 나갈 거 같아서 또 걱정이 들고 말았다. 뇌혈관 수축으로 인한 두통이 심하게 와 버려서 오늘 하루를 망치진 않을까, 러닝을 하는 이유가 러닝 하기로 끝나면 안 되는데, 우려하면서 털모자의 접힌 부분을 내려서 귀를 덮었다. 어쨌든 잊지 않고 모자를 챙겨 쓴 나 자신을 칭찬하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다.


'오, 첫날인데 준비가 철저해. 시작이 좋아.'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스포티파이가 선곡한 음악을 무료 체험으로 들으면서, 한강변을 (코스 대부분을 천천히) 달려서 합정동으로 꺾어졌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도 구경하고, 드물게 일찍 문을 연 한 카페에서 리얼 모닝 커피도 마셔보고, 되돌아오는 길도 (역시나 천천히) 달렸다. 나이키 러닝 앱에 따르면 나는 러닝 첫날 4km에서 5km 사이를 뛰고 돌아왔다.


무엇보다, 전날보다 하루가 기대대로 일찍 시작되었다 힘차게.

이런 날들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아침에 달리는 길_20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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