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 결혼_결혼식을 꼭 해야 하나요?

의미_하루의 단어, 문장

by 시아시아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희님을 만났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 사회 기준으로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우리 둘.

희님은 요즘 “지금 만나는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걸까?”,

“이 사람과 결혼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2~3년 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지금 남자친구가 좋고 편한 사람인데, 왜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지?

결혼식 너무 돈 아까운데 꼭 해야 하나?”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와 ‘결혼해야겠어!’ 하는 직감이 오지 않으니,

‘이 사람이 내가 결혼할 사람이 아닌가?’라고 고민했다.

그리고 결혼식은 내게 보여주기식일 뿐인 행사였고,

거액의 돈이 나갈 뿐인 허례허식이었다.

내 안의 답답함을 뚫을 실마리가 절실했다.


문득, ‘내가 결혼에 대한 나만의 의미를 정립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일이든 ‘나만의 의미’가 필요한 사람이다.

의미가 없으면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결혼만큼은 어쩐지 흐릿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TOP3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괜찮은 사람 만나 때가 되면 으레 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결혼’이라는 단어에 집착했다.

사전을 뒤지고, 한자어를 분석하고, 역사적 맥락을 공부했다.






먼저 파자하여 뜻을 찾아보았다


‘결혼(結婚)’은 ‘맺을 결(結)’과 ‘혼인할 혼(婚)’으로 이루어져 있다.

‘맺을 결’에는 ‘가는 실 사(糸)’가 들어간다.

비단을 만들기 위해 여러 실을 길게 이어야 하듯,

‘결’은 ‘이어짐, 결합’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혼인할 혼’은 어두울 혼(昏)이 들어간다.

‘근본’을 의미하는 ‘나무뿌리 근’ 밑에 ‘해 일’이 결합된 한자이다.


문득, ‘실’이 ‘인생’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생이 꼬인다는 건 실이 여러 겹 꼬이면 단단해지듯,

그 사람도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던 말.


이 의미들을 종합해 봤을 때, 내가 내린 결혼의 정의는 이렇다.

삶에서 단단하게 꼬여온 두 사람의 인생이 만나 하나의 줄로 이어지고,

그 줄이 앞으로 자식이라는 생명이 뿌리내릴 토양이 되는 것.


결혼의 역사도 짚어보았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결혼에 ‘사랑’이라는 개념이 들어온 건 불과 200년 전의 일이다.

그전까지 결혼은 철저히 ‘집안과 집안의 계약’이었다.

계약서가 없던 더 오래전 시대에는,

결혼 후 정부, 첩을 두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사회는 진화했고,

결혼은 점점 더 책임과 무게를 갖는 ‘제도’로 변화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게만큼 ‘사랑’이라는 감정도 함께 기대하게 된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최종적으로 결혼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 내렸다.

결혼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하고 예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두 집안의 결합이며, 두 사람의 인생이 얽히는 일이고,

앞으로 태어날 존재들이 뿌리내릴 토양을 만드는 책임이 막중한 일이다.






이렇게 의미가 정리되자, 이전까지의 고민에 대한 답이 자연스레 나왔고,

그 속에 숨어있던 나의 두려움도 마주할 수 있었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하는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나는 ‘내가 옳은 선택을 하는 걸까?’라는 불안이 있었다.

재력, 외모, 능력, 성격 같은 기준들에 흔들렸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해도 되는 걸까? 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에 대해 정의를 내리자, 명확히 판단할 수 있었다.

나는 심신이 건강하고,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며,

결혼이라는 결합의 무게와 책임을 기꺼이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우리가 함께 만든 안전한 토양 위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을 테니까.


지금까지 남자친구가 해왔던 말과 행동,

그리고 함께 그려본 미래의 모습들을 돌아보며,

나는 그가 나의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혼식을 꼭 해야 할까?


처음엔 결혼식 자체가 돈 낭비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단지 돈을 아끼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한 번뿐’이라는 말에 휘둘려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의미 없이 흘려보낼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결혼이 ‘공적인 약속’ 임을 이해하고 나니,

결혼식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서로에 대한 다짐을, 우리를 지지해 준 사람들 앞에서 선언하는 자리였다.

동시에 우리를 키워주고 응원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런 기준에 의거해서 ‘우리 다운 결혼식’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의 말에 휩싸인다.

“몇 살 전에 결혼해야 한다”, “결혼식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기준들.

나 역시 ‘직감이 오면 그 사람과 결혼하겠지’,

‘30대 중반쯤이면 해야겠지’, ‘결혼식 다 똑같지 뭐…’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결혼은 정해진 때에 해야 하는 것도, 정해진 형식으로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은 준비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흐름이고,

결혼식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의식이다.


사회가 정한 속도와 형태가 아닌, 나만의 속도와 스타일로.

그래야 내가 내린 선택을 기꺼이 책임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는 결혼은, 단단하게 나의 삶을

— 아니, 미래의 우리 가족의 삶을 — 채워줄 것이다.


25년 5월 11일의 단어: 결혼

25년 5월 11일의 문장:

결혼은 집안과 집안, 한 사람의 인생과 인생이 결합하는 순간이며,

앞으로 태어날 자식들이 뿌리내릴 토양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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