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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Dec 04. 2020

시-세이 ; 밑그림만 남은 이야기

조개

조개




썰물에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너는

그 빛깔이 참으로 묘하고 아름다웠다

투박하게 줄기 진 표면 위로 흐르는
생기를 품은 순수함에 매료되어서는

모래 위에다 배를 깔고 턱을 괴고선
해가 저물도록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난 온갖 것이 더러운 육지의 것이라서
넌 육지에 더럽혀진 바다의 것이라서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어느 것 하나 네게 물어보지 못하였다

난 육지의 것이라, 넌 바다의 것이라,
밀물이 쓸려오면 그저 뒷걸음치겠지


- 삼류작가지망생






 싸이월드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학생 시절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선배고 동기들이고 모두 철 지난 싸이월드를 했다. 페이스북에는 없는 엔틱함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내 미니홈피는 20대 초반의 전신과 다름없다. 그런 싸이월드가 사라진다니, 업도 안 했는데. 대신 싸이월드 서버에 있는 수많은 추억들을 포토북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한다고 했다.


 '개인의 소중한 추억들로 돈놀이를 하다니, 최악의 추억팔이구만'


 투덜거리며 카드를 챙겨서는 싸이월드 사이트에 들어갔다. 로그인 페이지부터 오류가 떴다. 알고 보니 싸이월드는 도메인 연장 1년만 간신히 하고 서버 이용료와 임금이 체불된 채로 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상태였다. 이젠 진짜 돈 주고도 못 사는 추억이 됐다.


 대부분의 사진첩 폴더는 비공개였다. 나는 학과 행사 찍사(사진사)를 담당했어서 공식적인 행사의 사진 대부분은 내 미니홈피에 있었는데, 군복학 이후 여자 동기들로부터 사진첩을 닫아달라는 민원이 쇄도한 탓이었다. 이외에도 그림판으로 직접 그림 학교에 대한 단편만화들, 감성에 젖다 못해 찌든 문장들은 다시 보기 부끄럽다는 이유로 닫아뒀다.


 껍데기만 남은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보며 아쉬워하던 찰나에 문득 감성글 대부분의 시상이 되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긴 생머리에 옅은 눈썹, 무쌍커풀과 조그마한 입술, 왼쪽 눈 아래와 왼쪽 콧망울에 까만 점 하나, 얇은 소재의 원피스를 주로 입고 다니던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그 사람. 교외 OT 술자리, 진실게임 중 이 안에서 맘에 드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을 받은 내가 소맥 9:1 비율의 글라스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무의식 중에 슬쩍 곁눈질을 흘렸던 그 사람. 똑같은 질문을 받은 다른 동기 A가 '있다'라고 대답하며 무의식 중에 슬쩍 곁눈질을 흘렸던 그 사람. 모든 학과 사람들이 남자 동기 A와 나를 경쟁구도로 내몰며 떠드는 농담 위에 세워졌던 그 사람. 1학기 절반쯤 지났을 때 남자 동기 A와 학과 공식 커플 1호가 되었던 그 사람. 학기가 끝날 때까지 나는 대화를 피하며 도망치기 급급했던 그 사람. 남중 남고 숙맥도 이런 숙맥이 없을 정도로 머저리같이 미적지근했던 내가 단 한 번도 제대로 마음을 표현해보지 못한 그 사람.


 2학기에 들어서면서 단합을 외쳤던 학과생들은 어느샌가 성별에 따라 그룹이 나뉘게 되었고, 플스방에서 피파나 위닝을 하는 것보다 카페에서 수다 떠는 것이 좋았던 나는 자연스럽게 여자 동기들과 붙어 다니게 되었다.


 오전 수업 후 점심식사 자리에도, 늦은 술자리에도 그 사람은 항상 있었다. 그 사람이 내게 말을 걸 때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화의 맥을 끊어냈다. 그 사람의 눈을 피했고 여럿 아이들과 나란히 걸을 때면 그 사람의 주변에서 벗어난 대열로 슬쩍 이동하곤 했다.


 한 동기와의 술자리에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병신같이 왜 그래? 고백한 것도 아니면서 혼자 궁상을 떨어?'


 그날 집에 돌아오다가 작은 둔턱에 걸터앉아 생각했다. 고백을 거절당했을 때 잃을 관계들이 두려웠다. 그러면 답은 하나였다. 그 마음을 절대로 꺼내지 않고 친한 관계로서만 유지하는 것.


 여느 다른 동기들과 다를 바 없이 그 사람을 대했다. 물론 학과에서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 사람도 분명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냥 가볍게 부정해나갔다. 때로는 조금 과할 정도의 단어를 사용하며 어중간한 벽을 허물고는 친근함의 거리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참 다소곳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특히나 웃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여자 취급하는 농담에 익숙해지고 그 사람과 둘이서 같이 다니는 시간도 많아지면서, 누군가 "설마 '그 사람' 좋아하는 거 아냐?"라는 짓궂은 농담에 '여자끼리는 결혼하지 못한다'며 되받아치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나는 딱히 사이가 나쁘다 할 사람들은 없었다. 학과생들이 서로 그룹을 형성하고 벽을 세워 갈라서는 와중에도 나는 모든 그룹에 속해있었다. 박쥐라며 놀려댈 때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끼리 맘에 안 든다며 갈라서놓고는......'


 그 사람의 남자 친구인 동기 A도 예외는 아니었다. A는 사교성과 친화력이 뛰어났고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과대표였던 A와는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다. 단순히 개그코드가 잘 맞았고 티키타카가 좋았던 것뿐이었다. 2012년 8월 입대 예정이었던 A는 2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술 마실래?'라고 물었다. 지금껏 A와는 단둘이서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알겠다고 답했다.


 복수전공 이야기랑 학교 가십거리들을 안주삼아 술에 잔뜩 취해있던 때, 그 친구가 물었다. 아직도 그 사람을 좋아하냐고. '아니.' 즉각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텀을 줄 걸 그랬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A는 그 사람과의 작은 불화들을 이야기했고 나는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 뒤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눈을 떠보니 집이었고 A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사람과 꽃구경을 떠났다. 그리고 A는 입대했다.


 그 사람은 나와 있으면 편하다는 말을 했다. 그 사람이  다른 남자애들과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못 보기는 했다. 내가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을 참 오해스럽게 했었다. 나는 무슨 청춘드라마 찍냐며 어깨를 툭 쳤다. 그렇게 별 다른 일 없이 12월이 지나가고 있을 때 병무청의 소식을 받았다. 1월 초 입대였다. 지원 당시 1월로 신청하긴 했지만 계속 확정일자가 나오지 않던 와중에 갑자기 입대 28일 전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급하게 약속을 잡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대부분의 남은 일정은 여행을 떠났다.


 102 보충대에서 강원도를 배정받았다. 23사단 훈련소에서 지독한 한 달이 지나고 주특기 훈련 2주까지 마치고 나서야 22사단으로 옮겨졌다. 사단에서 훈련을 받고 이동한지라 일주일 동안 자대 배치받기 전까지 사단에서 대기를 하게 되었는데, 평상에 누워 쉬고 있던 중에 학과에서 롤링페이퍼가 왔다. 학과 동기, 선배들의 말이 가득 적힌 A3 종이 귀퉁이에 손때가 탈 정도로 계속해서 감상했다.


 사단 대기 첫날에는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전하고, 다음날엔 몇몇 학과 동기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 사람은 제일 나중에 통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튿날, 남은 동기들에게 연락을 돌리는데 그 사람이 자신한테 먼저 연락하지 않아 서운해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받았다. 전화를 마치고는 작은 수첩을 넘겨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수신음이 이어지고 찰칵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ㅇㅇ이니?'


 수십 번도 더 연습해왔던 대답이라 어렵지 않았다. 어떤 톤으로 어떻게 말을 걸고, 대답하고 반응해야 자연스럽고 마음을 숨길 수 있을지는 이미 완벽하게 터득한 상태였다. 그 사람은 왜 자기한테 늦게 연락했냐며 실망했다고 가볍게 투덜거렸다. 롤링페이퍼도 자기가 문구점에서 종이랑 펜 사다가 애들한테 돌아다니며 한 건데 완전 배신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학과 상황에 대해 물었고 그 사람은 내 부대에 대해 물었다. 나는 별 상관도 없는 이야기들을 떠들었다. 내가 살면서 제일 많은 별을 봤다는 둥, 식사는 뭐가 뭐가 나왔고 역시 듣던 대로 형편없다는 둥. 그렇게 30여 분을 떠들고서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었던 나는 새로운 주제를 찾아 고민했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그 사람이었다.


 '나 헤어졌어.'


 단 한 번도 연습해본 적 없던 이었다.


 '그래?'


 3초의 시간 끝에 내뱉은 대답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헤어졌고 언제 헤어졌는지, 괜찮은 건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시 정적이 흘렀고 나는 화제를 돌렸다. 어떻게 대화가 마무리되었는지 아무리 떠올려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  없었으니 기억에도 없겠지.


 그 사람과의 통화를 마치고는 옆에 있던 걸상 위에 누워 별을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되새겼다. 과해석하지 말고 의미부여하지 말고 착각하지 말라고. 그 사람의 의도가 어땠든 간에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진위여부를 파악할 용기가 없었기에 의미가 없었을 뿐이었다.


 뻔한 로맨스 소설의 클리셰처럼 우연히 다시 만나 밥을 먹는다거나 그런 일은 당연히 없었다. 졸업 이후에는 동기 결혼식장에서 한 번, 내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한 번 본 게 전부였다.


 지금도 간간히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 정도는 궁금할 때가 있다. 완성하지도, 망치지도 못  이야기라 더 아쉬움이 남는 걸까. 내년이 되어 싸이월드가 완전히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소식을 들을 즈음이면 다시금 생각이 날 것 같다.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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