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듯
네가 내게 온 것도 이유가 있다
아직은 그 이유를 모르지만서도
삶은 그걸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
오늘도 순례길을 걷는다
내가 널 선택한 것이 아닌
네가 날 선택한 것이어라
질긴 탯줄로부터 내려받은
엄마라는 신의 대리인이 되어
네 손을 꼭 붙들고 걷는다
그림자 하나엔 빛 하나가 있고
그림자 다섯엔 빛 다섯이 있네
네 그림자에서 난 찬란한 빛에
오늘도 어둠을 헤쳐나간다
- 삼류작가지망생
인스타그램 시 업로드 계정을 운영할 때 A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인기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루에 시 한 편씩은 꼭 업로드를 했는데, A는 '팬이 되었다'며 종종 잘 읽었다는 댓글을 남기곤 했다. 유기견, 유기묘에 관심이 많은 기독교인 A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두 아들의 일상 사진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외에는 다른 사람의 감성글이나 종교적인 글이 올라와 있었다.
언제였던가, 한동안 활동을 멈췄던 A가 오랜만에 시 한 편에 댓글을 달았다. 자신의 꽃은 너무 일찍 만개했고 그 순간을 보듬지도, 기억하지도 못했는데 꽃이 다 저버린 지금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바로 답할 수가 없었고 이틀을 고민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럽게 다듬은 표현으로 대답했다. 사설이 덕지덕지 붙었긴 했지만 "우리는 항상 다음 세 가지의 관계에 맞닿아있다. 첫째는 날 낳아준 사람과의 관계, 둘째는 날 보살펴준 사람과의 관계, 셋째는 내가 보살펴야 할 사람과의 관계. 사랑이란 모래를 손에 쥐는 것과 같다. 흘러내리는 모래 전부를 막을 순 없겠지만 아직 손에 남은 모래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내가 어떤 사랑을 받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랑을 줄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A로부터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전혀 몰랐을 A의 이야기였다. 너무 일찍 결혼해버린 탓에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지만 두 아들은 선천적 지병을 가지고 태어났고, A의 남편은 일주일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지냈다. 갖은 잔병치레를 겪는 두 아들을 혼자 돌보면서 삶의 의지가 깎여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글을 읽던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며칠 뒤, 나는 A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상상하는 것조차 감당하기 힘든 고민이라 어쭙잖은 말보다는 시로 답장을 드린다고, 아주 조금만이라도 이 시가 당신의 마음을 덜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이 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톨스토이가 남긴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항상 완벽을 추구한다. 하지만 가장 본받아야 할 인생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일어서는 것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해결책은 있게 마련이다. 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밝은 빛이 비친다."
그림자가 없는 곳에는 빛도 있을 수 없고, 그림자만 보고 걷는다면 빛을 만날 수 없다. 듣기 좋은 말은 늘 그렇듯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내 삶의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어디로 얼마나 더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걷는 법을 까먹지는 않기 위해 이 문장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