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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Dec 01. 2020

시-세이 ; 대화의 마운드에 서서

그저

그저




빠르기만 하는 공은
그저 공일 뿐이다

날카롭기만 하는 칼은
그저 칼일 뿐이고

뜨겁기만 하는 불은
그저 불일 뿐이며

말하기만 하는 너는
그저 너일 뿐이다


- 삼류작가지망생






 대화는 캐치볼처럼 하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캐치볼처럼 적당히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힘으로 공을 던지라는 말이겠지만 간혹 야구에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때부터는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경기가 시작된다.
 
 화자가 마운드에 서서 자신의 생각에 적절한 투구법을 선택해서 힘을 실어 던지면, 청자는 타석에서 투구 예상과 빠른 순발력으로 공을 받아친다. 경기의 목적은 단순하다. 상대방을 삼진 아웃시키는 것. 타석에 오르면 투수는 자신의 생각을 직구, 투심, 체인지업, 커브, 포크, 슬라이더 이외에 다양한 투구법으로 공을 던진다. 결국은 어떻게 던지든 간에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 상대를 아웃시키면 된다.
 
 스트라이크존에 넣어주는 투수는 그나마 양반이다. 일부러 헛스윙을 유도하는 파울볼, 주자를 속이는 히든 볼 트릭도 존재한다. 교묘한 속임수를 통해 실수를 유발하고는 꼬투리를 잡으면서, 공을 던지는 행위는 더 이상 상대방을 더 알아가기 위함 아닌 상대를 침묵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최악의 투수는 따로 있다. '직설적'이라는 단어를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투수가 '나는 원래 직설적인 사람'이라며 던진 공을 피해 타자가 도망을 치거나 맞고 쓰러지는 기이한 상황이 발생한다.
 
 폭투는 직구가 아니다.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던진 말일 뿐이다. 직구를 잘 던지는 사람의 공은 예리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타자가 배트를 휘두를 겨를도 없이 정확하게 최단거리로 스트라이크존에 꽂힌다. 심판 탓을 할 수도 없게 애매한 곳이 아닌 중심부로 꽂는다. 조롱과 비아냥, 인신공격을 곁들이지 않은 간단명료하며 불필요한 표현은 잘라낸 담백한 직구로.

 그래도 나는 유연한 몸으로 다양한 공들을 적절히 던지는 캐치볼 플레이어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섣부른 투구에 경기가 시작되어 공수교체 이후 '직설적인 사람'이라던 투수의 폭투로 돌아왔고, 나는 극심한 통증과 함께 맥없이 자리에 쓰러졌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고 나의 잘못도 시인했지만 그래도, 꼭 말은 하고 싶었다.

 폭투는 직구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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