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맘
게워낼 곳도 시간도 없어
목구멍 한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오네
비집어 끼울 틈 하나 없이
빽빽한 냉장고에 손을 넣어
칸칸이 담긴 것들을 뒤적이면
소중해서 꺼내지 못한 것
용기가 부족해 삼켜낸 것
상처가 두려워 숨겨둔 것
아직은 설익어 재워둔 것
하나 둘 꺼내니 수북한
때를 놓쳐 쓰지도 못하고
유통기한 지난 것들
소중해서 버리지 못하고
버리지 못해 소중한 것들
버려야 하지만 버릴 수 없어
다시금 넣어둔다
냉장고에서 탁자에서
삭은 것과 삭아가는 것들
곪아가는 악취를 몸에 두르고
오늘도 현관문을 나서네
- 삼류작가지망생
사람의 모든 이해 체계는 말과 글로 이루어진다. 그동안 학습했던 단어와 관념의 연결고리를 짜깁기하여 새로운 형태의 관념을 형성한다. 이를 다시 언어로 가공하여 상대방에게 전달하면 상대방은 다시 본인의 학습 범위에서 그 언어를 이해하고, 자신의 관념을 엮어 또 다른 형태의 관념을 만든다.
나는 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생각들을 글로 적어 내리며 정리하곤 한다. 이는 엉킨 실타래를 푸는 행위와 비슷하다. 서투른 손짓으로 실뭉치의 양끝을 찾아 헤매듯 투박한 단어로 논리성이 떨어지는 문장들을 더듬어 쓰고, 고리와 고리의 순서를 파악하듯 문장들의 전후관계를 파악한다. 그리고는 조금 더 세밀하게 문장들을 깎아낸다.
그렇게 다듬고 다듬다 보면 어느 정도 한 줄기의 문맥이 흐르게 되는데, 집중해야 할 것은 그 흐름 속에서 작은 조약돌 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함이다. 나는 왜 이런 부분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 나는 왜 여기서 이 부분을 알고 있음에도 누락시켰는가, 단순히 잊고 있던 것인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글에서 제외한 것인가. 나의 글에 반문을 제기하다 보면 의식 안에 숨어있던 진정한 마음이 그제야 모래를 걷어내고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는 정밀한 작업이 필요하다.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 마음을 파내되, 섣불리 파내어 스스로를 상처 입히거나 혹은 찌그러뜨려 왜곡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파내고 파내어 매끈한 나체의 전신이 모습을 드러내면 이젠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일만 남는다. 그저 끌어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막상 하기가 어렵다. 이전의 과정은 행위의 난도가 높은 반면, 이건 의지의 문제이기에 그렇다. 첫째로는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나체를 마주해야만 하고, 둘째로는 수면 위로 올라온 나체를 누군가가 볼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끌어올려야 한다.
위의 과정을 마치면 그제야 '문단'이 완성된다. 논리적이고 이해관계가 뚜렷하며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글이 된 것이다. 불안함, 불안정함, 약한 것과 악한 것이란 그렇게 정리하는 것이고, 그렇게 떠나보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것이 나의 유일한 생존법이었다.
나는 그렇게 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다시 쓰는 것이 두려웠다. 한 문장도 적어 내리지 못한 채 노트북을 덮고 열기를 반복하다 간신히 글을 마무리하곤 했다. 메모장을 열어보면 차마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내버려 둔 마음의 찌꺼기들로 가득했고 이미 몇몇 조각들은 썩어 문드러져 머리 한 구석에 끈적하게 눌어붙어 있었다. 키보드 앞에 앉아 가만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자면 또 나약하고 한심한 말만 늘어놓을 것 같아서, 마음속 깊숙한 곳의 추악한 생각들만 파낼 것 같아서 다시 노트북을 덮곤 했다.
사실 본문 중간에 털어놓은 여섯 장 남짓 분량의 내 경험담을 사전에 미리 잘라낸 탓에 이 글도 비겁한 글이 되었다. 그 내용은 별도의 수필로 분리했고 언제 공개할지도 모르는 글이지만 여전히 꾸준하게 쓰고 있다. 온전하게 건져 올려 그 실체와 마주할 수 있을 때면 업로드될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