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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May 12. 2024

엽편소설 ; 전지사회(미완)

  "나 그냥 완전방전 될래. 말리지 마."
  "이 새끼, 또 과전류 됐네. 그러다 진짜 방전돼 인마. 그만해."
  4A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전도체에 몸을 비비기 시작하자 2A가 들러붙었다. 흐느적이던 4A는 그의 손에 이끌려 힘없이 전도체에서 떨어져 나왔다. 3A는 그러든 말든 조용히 양극을 비비며 전류의 흐름을 느꼈다.
  "아아- 시발 존나 불공평해, 인생. 좆같아서 못 살겠다고"
  4A는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서랍 구석까지 굴러 들어갔다. 2A는 포기한 듯 손사래를 치며 자리로 돌아왔다.
  3A가 팔꿈치로 그를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이번엔 또 뭐래. 2A가 귓속말로 대답했다.
  '차였지 뭐. 그 있잖아, 리튬폴리머 여자친구. 버튼셀이랑 바람피우고 있었대.'
  '버튼셀? 애매한데. 워라밸은 좋은데 워낙 삽입부 편차가 크잖아.'
  '컴퓨터 메인보드에 꽂혀 있대. 여자친구가 차면서 그랬다더라. 4A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어쩔 수 없지. 4A니까. 3A는 곧장 수긍했다. 3A가 쌉싸름한 표정으로 양극을 비벼 내밀었다. 양극을 맞댄 2A의 전류에 조용히 건배를 했다.
  지금 제조년도 2022년 10월 동기들 중에서 유일하게 자리가 없는 건 4A 뿐이었다. 일반전지 클래스뿐만 아니라 충전전지, 특수전지 클래스를 전부 포함해서 혼자였다. 거의 공정이 사라지다시피 한 FC-1는 제외하고 말이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 4A의 철부지 시절, 장래삽입처가 뭐냐고 물었을 때 전기차라며 포부를 밝혔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4A가 신청할 수 있는 지망삽입처가 구형 정전식 펜이나 헤드라이트 정도였다는 걸. 하필이면 생산도, 진열도, 판매도 제일 적은 태생이라니.
  3A는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리모컨 삽입부로 가고 2A 분야는 못 들어가는 곳을 나열하는 게 더 빠르다. 충전전지 출신은 정년이 길어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받는다. 폴리머 같은 특수전지 출신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나 멋있는가. '저는 삼성 스마트폰 삽입부예요', '저는 페라리 배터리 삽입부입니다' 어떤 전지나 한 번은 꿈꾸는 인사말이다.
  4A는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정신을 차렸다. 리튬폴리머처럼 최신 전자기기에 들어가거나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특별하지도 못한다면 평범하기라도 하길 바랐을 뿐이었다. 주변에서 어디 삽입부에 갔어요, 어디 회사 서랍장에서 대기하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억울함만 차올랐다. 누구라곤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줄 아나, 4A는 날이 지날수록 양극을 비벼 흘리는 전류량이 늘어났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오랜만의 동창 모임 2차에서 전사(과전류로 인한 불안정 상태에서 발생하는 행동)를 부리며 판매대 서랍에 처박힌 4A는 이런 와중에 여자친구의 바람 현장까지 목격하고는 회로가 반쯤 나간 상태였다.

- 미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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