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오늘은 환기를 시켜야겠다 / 여성서사의 무기력 소설.
상여금이 들어왔다. 모두 집에다 붙였다. 이틀 전 엄마의 전화 때문이다. 한숨 가득한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져 갔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은 모른다. 송금을 마치고 은행을 벗어났다. 허탈함이 달아올라 서둘러 찬물을 끼얹는다. 더 큰 불은 감당할 수 없다.
은행 유리문은 왜 이리도 무거운지 모르겠다. 마음 무거울 사람들이 오고 갈 은행. 문이라도 가벼우면 좀 좋아. 조금은 거세게 문을 당겼다. 몸이 지쳐서였다.
바람이 차게 속을 파고든다. 은행의 히터 바람이 초겨울 바람을 타고 나를 뜬다. 조금의 따듯함마저 사라졌다.
얼른 집으로 가야 했다.
내가 사는 이 집은 현관서부터 전등이 먼저 보인다. 천장과 전등 사이가 맥없이 벌어져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은 저 사이로 물이 고이진 않을까 싶다.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천장이라도 있으니 빗물이 고일 일은 없다.
주방 한편에는 2 리터 생수병이 쌓여있다.
다른 건 몰라도 집에 마실 물이 없으면 그리도 서럽게 다가왔다.
잔뜩 쌓인 병들이 나의 의지와 같다. 비닐에서 생수병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오늘은 어떤 의지를 마시는가 곱씹는다.
고개를 젖혀 물을 마실 때면은 황당함에 갈증이 가시는 기분이다. 저렇게 떨어진 전등을 난 본 적이 없다.
사실은 종종 거울에서 본 듯도 하다.
처음 집을 보러 온 날에는 중개사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서 회사와의 거리, 교통비를 계산하느라 바빴다.
이 정도 지출이라면 집에 더 많은 돈을 보낼 수 있다. 이후로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다.
남향이지만, 하필 이 집 앞에 나무가 자라 햇빛을 막는다는 것,
그로 인해 벌레가 많다는 것,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벽지의 색 같은 정도의 문제다. 햇살 가득한 밝은 새집보다 이쪽이 더 낫다. 이편이 더욱 가볍다.
수전을 확인하던 그 순간, 조금 더 집을 둘러보았다면, 마지막 잎새 같은 저 전등이 바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외에도 볼 것이 많았다.
턱 끝이 무거워 고개를 들 힘이 없었다.
부엌에서 나는 의지를 마시며 조용히 격앙된 무기력을 맛본다.
부엌과 전등을 생각하자 눈이 시큰거렸다.
오늘은 환기를 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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