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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Jul 09. 2023

앙증맞은 핏방울-방울-

 헌혈을 하고 왔는데, 다음날이 된 오늘까지 피가 멈추질 않는다. 

 그렇다고 주룩주룩 흐르는 피는 아니고, 밴드를 붙이고 있을 때는 나오지 않다가, 떼어내면 작은 주삿바늘 구멍에서 ‘퐁-’ 말간 피 한 방울이 맺히는 거다. 앙증맞은 붉은 열매가 영글듯이 퐁- 한 방울 맺혔다가, 다음 한 방울이 이어 솟아오르자 두 방울이 섞여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팔뚝을 타고 흘러내린다. 


 징그럽고 끈적한 피가 아니라, 아주 말간 수채화 같은 핏방울이다. 빨갛고 맑은 이슬이 있다면 꼭 이런 색일 것 같다. 상처가 예쁠 수도 있구나.......


 통증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퐁-퐁- 두 번에 알코올 솜으로 한 번 닦아 냈다가, 다시 퐁-퐁-하며 핏방울이 방울-방울- 솟아오르는 것을 지켜본다. 그렇게 잠시 보다가, 다시 밴드를 붙이고 의료용 테이프로 꽉 묶어 지혈했다. 몇 시간 뒤 다시 풀었는데, 여전히 대일밴드를 떼어내자마자 다시 퐁- 한 방울이 솟아오른다. 나는 잠시 난감해진다. 



출처 : 픽사베이 @digital designer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 피가 안 멈춰요.’라고 하기에는 너무 ‘퐁-’스러운 상처이지 않나. 의사 선생님이 ‘어디 상처 좀 봅시다’라고 하면 나는 작은 대일밴드를 가리키고, 의사 선생님은 당황할 테고, 나는 밴드를 떼어낼 테고, 그러면 맑고 붉은 피 한 방울이 막 태어난 아이처럼 맺힐 테지. 그러면... 그러고 나면 의사 선생님은 어떻게 해주는 거지? 상처를 바늘로 꿰매기에는 상처가 주사 ‘바늘’ 구멍인데.


 음, 역시 안 가는 게 낫겠다. 어쨌든 대일밴드를 붙이고만 있다면야 문제 될 것은 없고, 그러다 보면, 잊고 또 하루 있다 보면 멈추지 않을까. 게다가 이 정도는, 피가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내 몸이 만들어 내는 속도가 더 빠를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귀여운 상처쯤은 그냥 둬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지 않을까.

 퐁-퐁- 

 ‘피가 안 멈춘다’라는 의료 영화에 나올 법한 위급한 말을 쓰기에는 너무 작은 상처다. '너는 상처야. 상처에서 나오는 흔적이야.'라고 말하기에는 이 핏방울은 너무 여리다. 

 그래서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작은 상처를, 그 안에서 나오는 빨간 핏방울을 잠시 보다가 대일밴드를 붙인다. 알아서 낫겠지.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팔을 심장보다 높이 하고, 꾹 눌러 지혈을 하라고 한다. 그리고 냉찜질이 도움이 된다고. 역시, 인터넷 검색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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