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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Jul 30. 2023

모든 순간이 운명이 된다.

어차피 운명(運命)은 정해진 거니까.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라는 말이 좋다.


 ‘자신의 운명대로 살지 말아라.’ ‘운명은 극복하는 것이다.’라는 비장미 넘치는 말들은 어쩐지 거부감이 든다. 운명을 극복해 내는 사람들을 멋지고 진취적인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싶다. 내가 그런 인간이 아닌지라 못된 질투심에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명이 말 그대로 ‘운명’이라면, 사실 운명을 개척하는 모습도 그 사람의 운명일 뿐인 것 아닌가- 하는 꼬인 마음이 올라온다. 타인이 정해준 길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당당히 가는 모습 역시 결국 그 사람의 정해진 운명일 뿐이라면. 그 반대로 무난히 전철을 밟아가는 삶 역시 그 사람의 운명일 뿐인 것이 된다. 그렇다면 굳이 어느 한쪽을 추켜세우거나, 반대쪽을 비난할 이유도 없을 테다. 




 '정해진 운명'이란 놈은 꼭 툭툭 말을 던지는 것 같다.

 “이미 정해져 있으니 어떻게 해도 상관없어, 네 마음대로 해.” 

 무심한 이 말에 자주 위안을 받는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니까, 남들이 뭐라고 해도 애먼 곳으로 발을 내딛든, 자리에 드러눕든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것이 되어버린다. 


 운명. 옮길 운. 목숨 명.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어차피 나의 생사나 처지가 정해져 있다면 내가 아무리 지키기 위해 불안해하고 애써봐도 바뀌는 게 없다. 반대로 해보고 싶은 대로 다 해봐도 바뀌는 게 없을 거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모든 순간에 운명적인 의미가 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즉시 내 운명이 된다.




 이미 던져진 주사위에서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고, 개입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주사위가 허공에서 돌고, 떨어져 땅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다가 벽에 찧기도 했다가, 이내 멈추는 그 짧은 시간을, 그냥 가지는 대로 우당탕 마음을 비우고 가는 게 가장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

 어차피 정해진 운명대로 굴러가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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