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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May 17. 2023

꼭 파이어족이 되어야만 하나요?

살고 싶은 삶이 있다면, 그냥 그렇게 살면 돼요




"파이어족이 되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 보니,

꼭 파이어족이 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었다."





출처 : 픽사베이, @Tumisu




한창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이른 은퇴, 파이어족' 등이 유행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듯하. 아마 직장노동 시장이 존재하는 한 이것들을 지칭하는 표현만 달라질 뿐 계속될 것 같다. "다들 가슴속에 사직서 하나씩은 품고 살잖아요"-라는 오래된 격언이 있는 것처럼.


나 역시 경제적 자유로 40세 은퇴를 하겠다며, 말 그대로 돈에 '환장'해 있던 때가 있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보지 않고,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꾸리고 싶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돈 같은 거 생각하지 않고 선물을 주고 싶고,

음... 출근 걱정 걱정 없이 밤에도 커피를 마시고, 대낮에 공원을 걷고 싶어..'



이런 생각으로 파이어족,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이들은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요.

-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요. 여행도 함께 다니고요.

- 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걸 사주고 싶요.

- 려운 사람들에게 기부 할 겁니다.


일명 '파이어족 꿈나무들'에게 왜 파이어족이 되고 싶은지를 물으면 주로 위와 같은 답이 따라온다고 한다.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진부할 정도로 많이 들었던 말들 아닌가?

파이어족이나 경제적 자유 등의 용어가 등장하기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해오던 말들과 똑같다.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어-' 뒤에 나오는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인생의 모습들이었다.


파이어족이 되고 싶은 이유, 는 결국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인 셈이다.



그런데 이 꿈들이 파이어족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이 그려오던 것이라면,

'평생직장'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부터 이어져오던 꿈이라면,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꼭 파이어족이 되어야만 그렇게 살 수 있는 걸까?'





출처 : 픽사베이 @RebeccasPictures



얼마 전, 나는 이에 대한 답을 들었다.

답을 준 그녀는 '꿈나무'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곧 조카가 태어나거든요."


일주일 정도의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생계형 아르바이트생 백수들이 모인 식사시간이었다.

일주일 후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그걸로 무얼 할 거냐는 질문에,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장난감도 사주고, 좋은 분유도 사주고 싶어요. 언니에게 몸에 좋은 것도 많이 사주려고요."


그녀는 딱 필요한 만큼의 돈을 위해, 딱 필요한 만큼만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사주겠다고 웃는다. 지금 제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랑하는 작은 생명에게.



그녀는 파이어족과는 반대점에 서 있는 백수족이다.

그런 그녀가 오히려, '파이어족만 되면 이렇게 살 거야.'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외침을 가볍게 넘었다. 이미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다.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특히나 그것이 '사랑을 주는 일'이라면 파이어족이 되는 것은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하는 조건이 아닌데.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는 바라봄... 아니, 아니다, 그녀는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산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고 싶기에 사랑을 한다.





욜로족이라거나, 미래는 생각하지 말고 그저 돈을 탕진하며 현재를 즐기겠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단순한 소비를 지양하는 편이며, 돈 무척 중하게 대한다.



그저, 파이어족이 되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 보니, 꼭 파이어족이 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당장에 살 수 있는  삶의 모습이었다.





출처 : 픽사베이, @neet1004




그녀를 떠올리며, 나는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무얼 할 수 있나 생각했다.



해외여행은 못 가지만, 어차피 시간 많은 백수인 처지. 비수기에 저렴한 비행기표로 제주도는 갈 수 있다.

미슐랭 파이닝 레스토랑은 못 가지만, 집 앞 시장에서 미나리를 사다가 고기와 다진 마늘과 김치를 넣고 볶음밥을 해 먹어야지.

그러고도 핸드폰 요금이나 공과금을 내고, 남은 돈을 저축도 할 수 있겠다.



파이어족보다 나로서 살고 싶어 백수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새 파이어족이 되어 살고 싶었던 일상을 백수가 된 지금 살고 있었던 거다.


꼭 파이어족이 되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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