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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May 21. 2023

사는 건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다.

- 하면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



"일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다. 하면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미셸 투르니에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인용한 이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와, 어떻게 저런 완벽한 논리를 구사하지? 아주 기가 막힌다. 정말이지 천재다 천재.'

감명을 받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이후 이 말은 김영하 작가의 방송 모습과 함께 제법 유명한 짤이 되어 인터넷에 떠돌았다.



출처 : 픽사베이 @mohamed_hassan



그런데 갈수록 이 말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피곤한 건 일뿐만이 아니었다.


노는 것도 피곤하다.

놀고 집에 와서 소파에 쓰러지듯 눕는다. "아, 피곤해. 이제 노는 것도 오래 못하다니까."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피곤하고, 너무 오래 자도 되려 피곤하다.

적게 먹어도 많이 먹어도 피곤하다. 적정량을 먹으려니 그걸 또 신경 쓰느라 또 피곤하다.


정말이지 피곤한 일 투성이다.

아니, 생각해 보니 피곤하지 않은 일이 없는 것 같다. 모든 일이 다 피곤한 걸 보니 그 어느 것이든 본성에 맞지는 않나 보다. 어디 내 본성에 딱 들어맞는 거 없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간단한 행위조차 괜히 '숨쉬기 운동'이라는 엄연한 '운동'의 한 동작으로 규명된 게 아니다. 명상에서도 가장 기본이자 으뜸으로 다루는 것 중 하나가 호흡이다. 숨을 쉰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다스리고 집중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란 반증아닐까.

그 어려운 일을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매일 매 순간 해야 하니 '산다는 건' 이토록 힘들다. 사는 건 정말이지 인간 본성에 맞지 않다. 에고고.......






출처 : 픽사베이 @Clker-Free-Vector-Images



그렇다고 산다는 행위를 스스로 멈추자니, 그것 또한 인간의 본성에 썩 맞는 건 아닌가 보다. 더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귀찮아. 피곤해.'를 입버릇처럼 하던 내게 엄마는 "그렇게 귀찮으면 숨은 왜 쉬어."라고 타박했다.

나는 정말이지 충격받아 엄마를 빤히 쳐다보다 대꾸했다.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당연히 숨을 안 쉬는 게 더 귀찮잖아.......!"


...그때 나를 세상 하찮은 존재로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래도 그녀는 다음 말을 하지 못했으니 내 승리였다. (엄마는 더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버린 것 같지만)



어쨌든, 숨을 조금만 참아봐도 얼마나 귀찮은 지 알 수 있다. 설령 고통스럽지 않은 방법을 생각해 봐도 그것 나름대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아등바등 살아낸 것도 억울하고.

그렇게 이런저런 비교질을 하다 관둔다. 아, 정말이지 안 그래도 피곤한데 괜히 더 피곤해졌다.

어쩌겠는가. 사는 게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더라도 이미 살게 된 이상 그걸 거스르는 게 더 피곤한데. 에휴휴......






출처 : 픽사베이 @wixin_56k



인간의 본성을 신이 만들어 낸 '운명'이라고 본다면, 살아가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늘 '운명에 저항하는 운명'을 살아가는 역설적인 꼴이다. 그런데 본성에 거스르는 삶이 운명이라면, 오히려 본성에 순응하는 삶이 운명에 저항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저 내 마음의 본, 근본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 그러니까 그저 내 마음이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하며 살아보는 것. 


어떻게 해도 산다는 것은 피곤해 죽겠는 일이다. 그런데 죽는 것은 그것대로 또 피곤해 죽겠는 일이다. 그러니 조금이나마 내 본성에 맞게 하고 싶은 걸 더 많이 해봐야 그나마 더 억울한 삶이 아닐까.


물론, 종종 부모님의 하찮아하는 눈빛을 받을 수 있다는 부작용은 조금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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