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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Sep 13. 2023

잠시 멈추고 쓸데없는 생각을 해야 해

정말 ‘내 생각’을 하며 살면,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거야

 


인간은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할 때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 <도둑맞은 집중력>


          

  

 



서른이 넘어가면서, 친구과 대화에 3가지 단골 주제가 생겼다.

 

 ① 건강 : 영양제 뭐 먹어?, 살기 위해 이제 정말 운동해야 하는데

 ② 미래계획 : 물경력 될까 걱정이야, 결혼할 거야?, 나 뭐 해 먹고 80살까지 일하지

 ③ 멍청함 : 요즘 머리가 안 돌아가, 멍청해지는 게 느껴진다니까, 나 너무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것 같아


      

 그리고 모든 대화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가?”



 사실 모두 알고 있었다.

 괜찮지 않아. 전혀, 정말이지, 괜찮지 않다고!





 “요즘 나 정말 멍청해!”

     

 그렇다고 친구들도 나도 머리를 안 쓰고 사는 인간이냐 하면, 반대에 가깝다. 


 출근함과 동시에 오늘 처리할 업무를 나열하고, 먼저 해야 할 일, 연락해야 할 매뉴얼을 간단히 정리한다.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깨진다), 예산과 규정을 점검하고, 근거 데이터를 수집한다. 점심시간, 직장 동료들 이야기를 듣는데 다들 열심히 산다. 아이들과 놀아주면서도 재테크나 자기 계발, 운동까지 하는 게, 저게 진짜 열심히 사는 거지.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하며 온갖 계획을 머리로(만) 세운다. 

 ‘아, 그런데 우선 아침에 팀장이 쓰라고 한 보고서 먼저… 야근하면서 처리해야 하니까… 이 계획은 내일부터.’ 

 밤 10시. 퇴근하며 경제 라디오를 듣는다. 이대로면 내가 노인 빈곤층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100세 시대라는데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오랜 시간 일을 해야 하는데 경력관리는 또 어떻게 할지 ‘생각한다.’


 

 그렇다, 당장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다. 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다!


 그렇게 세상의 정보를 욱여넣고도, 마지막 잠들기 직전 눈을 감으면 끝내 자괴감이 올라오고야 만다.     

 ‘아, 오늘도 나 정말 생각 없이 살았다.’

          


 머릿속 전구는 꺼졌고, 굳게 닫힌 댐 문처럼 막혀있어 아무것도 흐르지 못하고 썩어 혼탁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너무 많은 걸 놓쳐버리기 시작했다. 사소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건 아주 작은 문제였다. 

 머릿속이 깜깜한 것을 넘어, 그 어둠 속에서 간신히 존재하던 것조차 벌레가 파먹기 시작했다. 일상생활과 업무, 그리고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나 자체가 없어지는 듯한 울렁거리는 상실감이 몰려왔다.

  마치 게임 속 NPC 정체성이랄까. 남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 주면 그에 맞추어 매뉴얼대로 반응하는 식이었으니 다를 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잠시 멈추어야 했다.     


 무언가 아주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직감이 들면, 대게 잘못된 게 맞다.

 내 머릿속에는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를 때면 쓸모 있는 생각들이 소리쳤다. ‘쓸데없는 생각 좀 하지 마!’     

 그렇다면 반대로 하면 된다. 잘못된 기분이 들었는데 방법을 모르겠다면 우선 그냥 다르게 해 보면 우당탕탕 방법이 찾아지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을 마음껏 해보는 거다.

 당장 유용한 ‘쓸모 있는’ 생각이 아닌, 이런 생각을 왜 하는지도 모를 ‘내 생각’. 조금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사유’ 또는 ‘사색’이랄까. 


 물론 거창한 건 아니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하지만 억지로 끝내지 않고 파고 들어보는 것이다. 내 안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대로 흐르게 두는 것이다. 그건 나의 파편들이니까.



 가령, 헌혈하고 받은 영화표로 뭐 볼까? … 그런데 요즘 영화관에 사람 많나 … 넷플릭스 같은 OTT 시장이 정말 영화관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까 … 영화관은 ‘경험’의 장소가 되어가는 걸까. 가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은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까. 요즘 계층에 따라 공간의 경험 장소가 나뉘는 것 같아. … 그러고 보니 어제 왓챠에서 본 <포커페이스> 참 재미있던데. 주인공 발성이 캐릭터와 참 잘 어울리는 느낌이야. 매 회차에 추격이 붙는 플롯으로 긴장감을 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잔인함 없이도 충분히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점에서 감독이 아주 똑똑한 것 같아. … 아 어제 2화에서 서브웨이가 나왔는데 … 주말에 샌드위치 먹을까. 샌드위치는 완전식품이지. … 따위다.      



 정말이지 쓸모가 없다.

  대부분 먹는 걸로 생각이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사유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당장 보고서 작성이나 노후대비, 승진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점심을 먹으며 생각을 떠올리다 문득 머리가 ‘흐르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나는 후다닥 핸드폰을 꺼내 그 사고의 흐름을 기록했다. 


 문득 아주 정확한 감정이 나를 채웠다. 그건 아주 분명한 '즐거움'이었다.

   


 쓸모 있는 생각들을 잠깐 멈추고 정말 ‘내 생각’을 하며 살다 보면, 어떤 삶의 갈래에서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들이 올지도 모른다. 그 선택들 덕분에 적어도 내 삶은 더 즐거워질 것이다. 스스로를 조금은 덜 멍청하다고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무거나 쓸데없는 시간을 하루에 딱 10분만, 마구잡이로 해보자.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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