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슬픔이 머물다 흐르기를...
작은아버지네 사촌 두 명이 우리 집으로 왔다. 오빠와 나까지 어린이 4명이 엄마빠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잤다. 설, 추석 같은 명절이 아니면 자주 만날 수 없는 우리는 그저 4명이 모여서 같이 자는 게 좋았다. 왜 갑자기 모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봐야 조금 더 눈을 뜨고 버티는 거였겠지만, 우리는 졸음을 쫓으며 깔깔거리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 병원으로 갈 때도 신이 났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걸어서 30분 남짓이었고, 어린이 4명은 손도 잡고 깔깔거리며 뛰듯 걷듯 병원으로 향했다.
갑자기 공기가 달라진 것은, 영안실 문지방을 넘는 그 순간이었다.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고, 눈물이 왈칵 흐르기 시작했다. 다른 2명의 사촌도 쓰러져 울었다. 지난주까지 나랑 같이 잠들던 할머니가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지난주에는 막내이모가 와서 피자를 만들어 드렸다. 할머니는 피자가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맛있다고 드셨다. 할머니가 웃으며 잘 드시니까, 이모는 다음 주에 또 와서 만들어 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피자를 또 같이 먹을 수 있는 다음 주는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엄마는 내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침대를 사주겠다'라고 약속했다. 나는 할머니와 방을 같이 쓰고 같이 잠들었다. 침대가 너무 갖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셔야 침대를 가질 수 있다는 게 너무 슬펐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너무 이상하고 미웠다.
할머니 장례식을 보내며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울고 있는 게 이상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할머니가 없어서 자주 슬펐다. '할머니'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울었다.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다가 나쁜 말을 내뱉었는데, '너 아파서 쌤통이다'라는 내 말에 친구는 '너 할머니 잘 돌아가셨다'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또 학교에서 펑펑 울었고, 친구는 선생님께 엄청 혼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할머니'라는 단어는 내게 울음버튼이 되었다.
10살 남짓한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30년 정도가 흐른 얼마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아빠를 모시고 막내이모댁에 가 있다가 임종소식을 듣고 서둘러 장지로 향했다. 3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심장이 딱딱해진 것인지 눈물이 잘 나지 않았다. 당신의 몸을 살피기도 힘든데 장례식장을 지켜야 하는 아빠와 오랜 시간 때마다 외할머니댁을 방문하며 살뜰히 챙긴 엄마의 마음이 너무 슬플까 봐도 걱정이 되었다. 나의 슬픔이 과연 드러날 만큼 큰 것인지도 잘 모르겠는 행사 같은 장례식이 지나가고 있다.
같은 가족의 죽음도 이렇게나, 마음이 다르다.
10살 남짓한 꼬마와 불혹을 지나는 마음의 감수성 차이만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점점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잦다.
다음번의 죽음은 내게 어떻게 찾아올지 벌써 걱정이다.
너무 익숙해지지도, 너무 무디지도 않은 적당한 슬픔이 마음에 머물다 흘러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