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
생명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다.
장난기 있던 눈빛은 조금씩 초점이 없이 흐려지고,
딴딴하다 자부했던 종아리도 점점 가늘어진다.
늙은 아비는 그렇게 비척비척 걷는다.
생명을 붙들어두는 것은 무엇일까?
늙은 아비는 조금씩
매일같이 읽던 신문을 끊고, 욕을 하며 보던 뉴스를 보지 않고,
한 번씩 나가던 운동을 다니지 않았다.
할 일 없이 채워야 하는 하루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하는 듯 북한 소식을 전해주는 유튜브와,
텔레비전에서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트로트가 자리 잡았다.
어린 손주라도 있다면 가끔씩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엉뚱한 이야기가 채워졌겠지만,
티 없이 귀여운 손주 셋은 미국에서 자라고 있어 일 년에 한두 번쯤 집에 방문하는 게 고작이다.
채울 것 없이 넓은 집에는 늙은의 한숨만 가득하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진다.
의미 없이 보내는 하루에
자주 죽고 싶다 말하고, 또한 살아내어 의미를 찾고 싶어 하신다.
죽음이 한 발짝 들어서는 만큼, 삶이 한 발짝 멀어진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