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인마' 너 어떤 인간까지 마안나 봤니?
엔젤스(Engels)
얼마 전 한 중견 판사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조직엔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판결이 업무인 판사들도 마찬가지죠.” 다른 직업군도 아니고 판사가 결정 장애라니? 그의 말이 황당했다. 그래서 물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모든 조직엔 ‘장(長)’이 있고 그가 하는 일은 판단을 내리는 거죠. 실무에서 일을 정리해 올리면 우선순위를 정하고 인력과 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 게 리더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자기의 역할을 잊고 있는 리더가 많습니다. 무언가를 결정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으면서 조직 바깥의 외부자들처럼 지적만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주변을 살펴보니 ‘답정너’ 못지않게 결정 장애를 가진 사람이 주변에 많은 것 같았다. 무슨 일이든 자기 선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위로 떠넘기거나 아래로 책임을 전가하는 이들이다. 화제가 됐던 드라마 ‘SKY캐슬’의 강준상(정준호 역)같은 사람들 말이다.
드라마에선 강준상이 어머니에게 절규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선택으로 수술에서 배제돼 사망한 소녀가 사실은 본인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다. “내일 모레가 오십인데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요. 어머니가 이렇게 키웠잖아요.” 그러면서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 학력고사 전국 1등을 하고 의사까지 됐는데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딸을 잃은 아비의 심경이 절절하게 와 닿았지만, 어머니를 붙잡고 대성통곡하는 모습은 못나 보였다.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책임을 끝까지 어머니에게 돌리는 ‘마마보이’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SKY캐슬’이나 중견 판사의 말처럼 성공한 엘리트 중에도 제때 결정을 못 내리거나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기업에 다니는 10년차 샐러리맨 A씨는 새로 부임한 팀장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 “거래처의 납품 업무로 일정에 차질이 생겨 팀장에게 바로 보고했죠. 보통 같으면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거나 간단히 내용을 파악한 뒤 지시를 내립니다. 그런데 보고서를 써서 달라기에 조금 의아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보고서를 들고 상사에게 가서 결정을 받더군요.”
A씨의 말을 들어보니 그 팀장은 아주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자신의 윗선에 보고했다. 내가 만일 그의 상사였다면 “그 정도 작은 일은 알아서 하라”고 핀잔을 줬을 정도로 말이다. 작은 의사결정조차 혼자서 내리지 못하는 팀장 덕분에 A씨의 업무 스트레스는 더욱 커졌다. “이것저것 간섭하고 잔소리하는 건 많은데, 일이 진전이 안 됩니다. 뭔가 진행을 하려면 결정을 내리고 집중을 해야 하는데,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사실 이런 팀장 같은 사람을 조직 내에서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위 좋은 집안 출신에 명문대를 나와 높은 자리에 오른 엘리트 중에서도 이런 이들이 많다. ‘SKY캐슬’의 강준상도 그렇다. 대대로 의사인 명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가 붙여주는 과외 선생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 학력고사 수석을 했다. 그 후에도 부모님의 뜻대로 의사가 돼 아버지가 몸담았던 대학병원의 외과 과장으로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그의 실상은 자신의 인생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조차 스스로 내릴 수 없는 마마보이였다.
강준상이나 A씨의 직속상관과 같은 이들은 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까. 또 중견 판사가 말한 것처럼 결정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의 30~40대가 유년 시절을 1980~90년대의 사회상을 꼼꼼히 살펴봐야 알 수 있다. 왜 그들이 엘리트 마마보이가 됐는지 말이다.
<SKY캐슬 같은 엘리트 마마보이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