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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Dec 31. 2022

엄마도 엄마 때문에 힘들다니.

결국 엄마가 문제야.



"할머니 때문에 진짜 미치겠어. 내가 언제 그렇게 말을 했다고. 너무 억울해 엄마는. 그리고 보니까
자식 말을 특히 내 말을 절대 안 들으셔. 어쩜 그렇게 고집이 세신지. 엄마 진짜 평생 몰랐어. 지금 뭐에 삐치셨는지 쳐다도 안 보고 말씀도 안 하셔. "


 60을 넘긴 엄마 인생에서 할머니와 이렇게 불편한 적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당신의 엄마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고. 자식이기에 몰랐지만 다른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그런 완고한 면이 할머니에게 있었다며 엄마는 속상해하셨다.
 

"엄마 당황스럽겠는데, 엄마. 엄마가 상처 안 받았으면 좋겠어."

 
사실 엄마가 아니라 나에게 하는 위로였다. 엄마에게 받는 상처가 얼마나 아픈 것인지, 나는 알기에.



 "식이기에 몰랐던 게 아니고, 엄마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서 모르셨던 것 같아요, 엄마. 나는 30살 언저리부터 엄마가 불편했는데 엄마는 그래도 60년 넘게 엄마가 좋으셨을 거잖아요."
절대 내뱉지는 못할 마음의 소리이다.



"엄마가 늙어서 할미처럼 되면 이 통화 녹음해뒀다가 엄마한테 들려줘. 너랑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 너 둘째 낳을래?  애 봐준다는 핑계로 니 옆에 가서 살게."

"이제 와서??"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꾹 참았어야 할 말이 튀어나왔다.

"어? '이제 와서'라고 하는 걸 보니 너도 엄마탓하나보다~ "

얼버무렸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 이야기를 해봤자 모든 불똥이 나에게 튈 것을 아니까. 나의 심신의 무사를 위해 피하는 게 답이다.
 





 할머니는 그림자와 같은 삶을 사셨다. 전쟁과 피난으로 어려웠던 시절 혈혈단신 남쪽으로 내려오셔서 일가를 이룬 할아버지의 기세는 누구도 누를 수 없었을 거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에게 조용한 내조를 하는 아내로 평생을 살아내셨다. 엄마는 나에게 '할머니가 배움은 짧으셨어도 누구보다 지혜로우시다'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엄마의 인생에서 부모님 두 분 중 할아버지의 영향이 훨씬 컸기에 할머니와의 관계에서는 드러나는 문제가 없으셨던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꼬장'을 1차적으로 받아내시는 분은 할머니였기 때문에 엄마 마음속에 할머니는 '기도 못 펴고 사는 불쌍한 엄마'였을 수도 있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 후, 할머니는  당신의 딸인 엄마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셨다. 래서 엄마는 할머니가 어려워졌고 버거워졌다. 서로의 마음을 모른 채 아슬아슬한 날들이 이어엄마의 선을 넘는 잔소리에 결국 할머니의 마음도 단단히 상해버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는 늘 북적북적하던 큰 집이었다. 할머니 혼자 살게 되면서 자식들은 아무래도 소원해졌다. 먹을거리가 가득했던 할머니의 냉장고는 많이 비워져 있지만 그마저도 관리가 안된다. 혼자서 큰 살림을 하시기가 사실 힘부치실 테니까.



 삼촌과 숙모는 한 번씩 할머니집 냉장고를 조용히 정리한다. 아무 말하지 않고 썩은 과일과 야채를 버린다. 할머니가 물으시면  모르쇠로 일관한다. 혹은 안 드시는 것 같아 가져가 먹었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잘했다'라고 답하신다.


 한편, 엄마는  '어휴~ 엄마~ 냉장고가 이게 뭐야. 왜 시들도록 안 먹고 저리 두셨어, 버려야지 왜 안 버리고'라고 한다.  할머니가 '나는 잘 안 먹으니 너 가져다 먹어라' 하시면 '다 시들고 나서 나 먹으라는 거야?'라고 말한다. 나에게 전화를 해서 할머니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신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시든 과일을 썩기 직전이 되어서야 먹으라고 주는 엄마'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는 엄마가 입지 않는다며 가져다 입으라고 주신 옷들이 철마다 쌓이고 있다. 안 입을 것 같다고 말하면 왜 안 입느냐고 당신한테는 맞지 않지만 너한테 딱 잘 어울리는 옷이라고 강요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싫다고 딱 잘라 거절하면 서운해한다. 마지못해 가져간다고 하면 고마워하는 것까지 바란다. 고맙다는 말이 없으면 또다시 서운해한다.  에게 엄마는 '취향마저도 강요하는 엄마'가 된다.


 엄마도 (엄마의)엄마랑 잘 지내고 싶은데 잘 안 돼서 힘들어한다. 나도 (내)엄마랑 잘 지내고 싶은데 잘 안 돼서 힘들어한다.


 할머니와 엄마사이, 엄마와 나 사이,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다.





 


 할머니는 서운하셨을 것 같다. 이것 하나 제대로 못하냐고 다그치는 딸에게 위로는커녕 상처를 받으셨을 거다.  할머니가 딸에게 바라는 것 위로공감이었을 텐데. 할머니 '딸이 있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실까? 잘 모르겠다.



 나와의 통화로 엄마는 마음이 많이 후련해지셨다고 했다. 다행이다.  나는 엄마에게 진정 어린 위로를 받은 기억이 별로 없지만, 엄마는 나로 인해 '딸이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셨으면 그걸로 되었다.


둘 중 한 명은 후련하니 다행인 건가.






며칠 뒤,

갑작스러운 엄마의 제안. 한 달에 한 번 할머니와 나, 엄마 셋이 점심을 먹는 새해 바람이 있다고 하신다.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느끼신 게 있는 걸까. 왜 갑자기 이러시는지 당황스럽다. 

카톡으로는 너무 좋다고 회신했다.




언젠가, 엄마에게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엄마의 부모에게 상처받은 기억이 없는지를 말이다. 목구멍으로 늘 삼키던 질문이 그날따라 어떤 이유에서인지 튀어나왔던 것 같다. 엄마는 머리를 크게 가로저으며 절대 그런 것은 없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엄하고 무서웠지만 워낙에 뒤끝 없이 마음을 풀어주셔서 남은 상처가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엄마가 스스로를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기억 속 한창때의 할아버지는 정말 무서웠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의 표현, 엄마의 숨겨진 상처는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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