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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Jan 04. 2023

아이가 들려주는 엄마찬양

나는 왜 못할까.



 작년(벌써) 크리스마스, 아이의 1주일 격리를 시작으로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방학 덕분에 여유 있게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끼리만 온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2022년의 마지막 일주일이었다. 급할 일이 없으니 아이와 다툴 일도 없다. 한동안 소홀했던 주방도 쉴 새 없이 돌아갔지만 또한 즐길 수 있었다. 아이의 증상이 심하지 않았고 다른 가족들에게도 전파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마무리할 수 있었던 시간.



 몇 년 전부터 책을 읽어주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잠드는 루틴을 해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자리대화가 사라졌었다. 빨리 잠들어주길 바랐고 아이를 재우는 시간이 '해야 하는 일'로 느껴졌다. 안 자려고 버티는 아이에게 결국 화를 내고서야 아이는 잠 들었다. '네가 자야 엄마도 좀 쉬지.'라는 말을 매일같이 했던 것 같다. 내 감정소모가 컸던 날은 더욱 그랬다.



 새해에 십 대가  딸. 아이는 하루하루 크고,  점점 내가 모르는 아이의 일상이 많아진다. 빠르면 10살에도 사춘기처럼 엄마와 거리를 두는 딸들이 있다고 선배맘들을 통해 들었다. 얼마 안 남았구나. 마음의 여유를 찾아서였나 보다. 잠자리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소민아, 소민이는 언제 엄마랑 말하는 게 좋아?"


"밤에 잠자기 전에 엄마랑 이야기하는 게 좋아. 꼭 자려고 누우면 하고 싶은 말들이 백만 개 떠오르거든."



 아이의 마음속 생각은 늘 궁금하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시간에 아이는 입을 열지 않는다. 잠들기 전, 살과 살이 맞닿을 수 있고 엄마 품 속에서 맘껏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그 시간. 아이는 속마음을 꺼낸다. 학원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내일 먹고 싶은 음식을 미리 주문하기도 한다. 친구랑 다툰 이야기를 하고, 친구 흉을 본다. 단원평가에서 100점 받은 반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한참을 조잘대던 아이가 갑자기 엄마 찬양을 시작한다.

 

 "엄마, 나는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마는 친절하고 예쁘고 날씬해. 음식도 잘 만들고 내 이야기도 잘 들어줘. 하고 싶은 것도 다 하게 해 주고 책도 읽어주고 보드게임도 같이 해줘. 화도 안 내고 짜증도 잘 안내! 아 짜증은 조금 내지! 근데 오늘은 하나도 안 냈어! 다른 엄마들 생각하니까 엄마가 내 엄마라 너무너무 다행이야.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좋아! 엄마 사랑해!"



"고마워 소민아, 엄마를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숨도 안 쉬고 말하는 아이의 말을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엄마, 나는?"


"......."






 아이도 나에게 듣고 싶어 한다.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오늘 하루를 열심히 보낸 것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어두운 방 안에서 아이의 눈동자는 반짝거리며 빛난다.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소민이에게 아이가 나에게 준 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사랑과 칭찬과 인정의 말을 쏟아부어주고 싶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맴돌긴 하는데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말들. 힘겹게 뱉어냈다. 정말 쥐어짜고 또 쥐어짜서 아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들을 해주었다. 휴. 이제 아이는 만족한 듯 잠이 든다.




 남편과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가 나에게 준 사랑의 말들, 아니 그보다 더 큰 크기의 말로 아이에게 부어주고 싶은데 잘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사랑의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니고 칭찬할 일이 없던 것도 아닌데 왜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이리도 어색하고 외계어처럼 느껴지는지에 대해. 남편은 받아본 적 없고 들어본 적 없는 사랑표현, 칭찬과 인정의 말들을 하기는 힘들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나도 력할 테지만 당신도 더 애써줘. 내가 하는 말들로는 부족할 거 같아."





 2023년은 내 안에 좋은 것들을 채워 넣는 시간에 힘써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긍정의 말을 부어주어야겠다. 내 안에 가득 찬 사랑의 언어들이 넘쳐흐를 수 있도록.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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