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당시, 아이를 몇 명을 낳아 키우자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몇 명을 낳고 싶다 말한 적도 없고 남편 또한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예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다. K장남, K장녀인 우리 부부는 둘 다 집안의 첫째이기에 많은 관심과 기대 속에서 자라났고, 최소한 평범하고도 평균적인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에 같은 마음으로 힘쓰고 있었다.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낳는 것도 순리였다.
어릴 때 내 꿈은 '외동'이 되는 것이었다. 외동이었던 친구 H는 늘 새 옷을 입고 항상 옷에 맞춰 헤어 액세서리나 모자를 쓰고 학교에 오곤 했다. 매일매일 신발과 옷과 모자가 바뀌었다. 귀동냥으로 듣기로는 H가 늦둥이에 외동딸이라 부모님이 귀하게 키운다고 했다. 귀하게 키운다는 것이 내게는 수를 셀 수 없는 옷과 액세서리로 생각되었나 보다. 귀하게 크고 있는 H가 부러웠다. 나는 개구쟁이 남동생 때문에막 키워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만 낳을 거야'는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나는 둘을 낳았다가는 귀하게 키울 수는 없겠다 싶었다. 새 옷과 새 신발, 액세서리를 사기에는 너무나 많은 돈이 들었다. 배우고 싶어 하는 것에 돈 걱정 하지 않고 배우게 해주고 싶고, 여행이나 문화생활도 풍족하게 경험하며 키우고 싶었으나 우리의 경제적 능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판단되었다. 그렇게, 양가 부모님의 바람과는 다르게 나는 외동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고 내 결심대로 나는 한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어머니와는 통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멀리 계시기도 하고 딸이 없으시다 보니 외로우실까 싶어 안부전화 겸 통화를 하다 보니 시시콜콜한 우리 가정의 일상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다. 소민이가 학교에서 몇 시에 오는지, 어떤 학원에 다니는지, 태권도에서 1품 심사에 합격을 했는지, 회장 선거에 나갔는지 등등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며느리인 내 일상이나 감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언젠가부터 어머님의 말씀 중에 자꾸 신경 쓰이는 문장이 생겼다.
"애가 하난데, 그 정도는 해야 안 되겠나."
"애가 하난데, 잘 키워야지."
"애가 하난데, 네가 잘해줘라."
'애가 하난데'로 시작하는 무수히 많은 문장들.
소민이의 투정이나 소민이의 행동들이 엄마로서 이해가 안 되어, 같은 부모의 입장으로 내 편을 들어달라고 어머님께 이야기를 한 것인데 그럴 때마다 어머님은 '애가 하난데'를 붙여 말씀하시곤 했다.
애가 하나인 게 나에게 약점인가?
소민이가 외롭게 클까 봐 걱정하시는 시부모님의 마음은 안다. 백 번 이해한다. 나 또한 평생 도움 안될 것 같은 남동생이 아주 가끔은 둘이라서 의지 될 때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외로울 수 있다는 단점을 차치하고 애가 하나라서 좋은 점이 무수히 많다. 적어도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아예 없다면 모를까, 아이가 하나든,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아이를 위해 애쓰는 시간과 노동은 같다고 생각한다. 어미의 몸은 하나이고 주어진 시간도 똑같으니 말이다. 아이가 하나라서 밥을 하지 않고 늘 외식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하나라서 학교 앞에서 대기하며 서있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하나라서 학원에 데리러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하나라서 씻기고 재우지 않아도 되는 것 또한 아니다.
당연히 자녀가 둘, 셋, 넷인 경우에 비해서는 훨씬 수월하겠지만 아이가 하나라서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시어머님이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게 아니라는 것을 애써 머리로는 이해하려 했으나 내 마음의 해석으로 '아이가 하나인데 왜 이리 징징대느냐'로 들리는 건, 아이를 하나만 낳아 키우는 것이 나만의 고집이고 결정이었기 때문에 드는 내 자격지심일까.
'감당도 못할 자식을 왜 이렇게 많이 낳아서'로 시작하는 한숨 섞인 말을 많이 들어봤다. '더 낳아줄 걸'하는 후회 섞인 말도 많이 들어봤다. 하나면 하나인대로 둘이면 둘 인대로 다 각자의 모습대로 장단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