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야, 애들 친정에 데려다 놓고, 바로 병원으로 가. 손자국이랑 다 사진 찍어. 진단받고 사진 찍어서 나한테 보내 놔."
어디선가 주워들은 대로 J에게 조언해 주었다.
그녀의 남편은 외도의 증거가 가득한 핸드폰을 그녀가 보지 못하도록 막으려다가 몸싸움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수라고 말이다. 실수로 목을 조르게 되었다니. 실수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이렇게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그 인간은 뭐래?"
"다들 그렇게 산다고. 그냥 살자고."
"무슨 소리야, 누가 그렇게 살아. 너 결혼 생활 계속할 수 있겠어? 이혼해."
친구에게 '이혼해라, 마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날의 나는 몰랐다.
그 후로 3년간 친구는 지독하게 시달렸다. 이혼 소송의 과정이 그리 힘든 줄 알았더라면 이혼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는 친구의 말을 들을 때마다 '이혼해'라는 말을쉽게 내뱉은 것을 후회했다. 이혼 과정에서 내가 친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욕해주고, 같이 울어주는 것 밖에는.
양육권, 재산분할, 위자료,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간 것이 없었다. 건건마다 진흙탕 싸움이 반복되었다. J는 지쳐갔고 우울증에 시달렸다. 약이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 5시간씩 걸어 다니며 체력을 소진하고 나서야 지쳐 쓰러져 잠들곤 했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마다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들어주고 위로해 주었다. 당시 준비하던 공부가 있었는데, 내 생활과 공부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친구의 일에 마음과 시간을 쏟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가 뱉은 말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더욱 신경이 쓰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내 위로가, 내 응원이, J에게 닿았을까.
"애들 생각해. 버텨."
고작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동네언니는 요즘 남편과 같이 있기 싫다며 나를 불러내곤 한다. 언니는 남편과 사는 동안 '내 편'이 아니라고 느낀 큰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남편이 '남의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이 다싫어졌다고 했다. 그렇게 수년을 애들 때문에 살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남편이 뭔가 느낀 것이 있는지 변한 모습을 보이는데, 예전에 언니가 원했던 남편의 모습으로 변한 것인데도 꼴도 보기 싫다고 말했다. '그러게 미리 좀 잘하지, 왜 이제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맞춰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애들만 아니면 당장 갈라서고 싶다는 동네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말을 아꼈다. J에게 했던 어쭙잖은 조언들이 큰 실수였다고 생각하기에 함부로 판단하거나 편을 드는 말은 꿀꺽 삼켜버렸다. 그저 '그랬구나, 언니가 힘들었겠네, 형부도 애쓰고 계시긴 한데, 그래도 언니의 마음에는 닿지 않는구나'라며 앵무새처럼 언니의 말을 따라 하기만 했다. 언니는 미적지근한 내 태도에 서운해 할 수도 있겠지만 5년 전의 실수를, 후회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말은 그저 쉽고, 행동에 따른 책임은 무겁다.
그리고 한쪽의 입장만으로는 전부를 알 수 없다.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만이 아는 거니까.
인디언 말로 친구라는 뜻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J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동네언니에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