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쿨존 어린이 사망사고가 몇 건 연달아 발생했다. 내 아이 또래의 반짝반짝 빛날 아이들이, 그렇게나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가버린 사건들을 뉴스로 접하면서 슬프고 또 화가 났다. 어린이 보호구역에는 신호등, 과속방지턱, 과속단속카메라 등의 많은 장치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해 불쌍한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다. 비단 사고라는 것이 꼭 어린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어른들이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안타까운 스쿨존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그게 내 아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아이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또 당부할 수밖에 없었다.
매년 학부모 폴리스 활동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추어 학교 주변 순찰과 생활지도를 하는 것으로 1년에 2번 정도 활동한다. 형광색 폴리스 조끼를 입고 2인 1조로 학교 주변 통학로를 순찰하는 활동으로 안내받긴 했지만, 나는 주로 1시간의 활동 시간 대부분을 학교 앞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교통안전을 지도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삼삼오오로 하교하는 아이들은 횡단보도에서 장난을 치느라 주의를 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원이 늦어 정신없이 뛰어가는 아이도 있다. 길 건너편의 엄마를 향해 양 옆을 살피지도 않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 5초도 남지 않은 시간에 건너겠다고 뛰기 시작하는 아이 때문에 출발하려는 차를 막아서야 할 때는 등골이 오싹해진다. 폴리스 활동을 할 때 내 손목에 채워져 있던 스마트워치는 스트레스지수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며 휴식을 취하라는 알림을 보내왔다.
소민이는 학교 앞에서 달려오는 전동킥보드에 치여 다친 경험이 있다. 교문 앞에 멀찍이 서있던 나를 향해 반가워하며 달려오던 소민이가 전동킥보드를 보지 못해 내 눈앞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타박상 이외에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그 순간 잠깐 공중으로 붕 떴다가 바닥에 떨어진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여전히 심장이 요동친다. 몇 주 전에는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건너편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뛰기 시작한 소민이가 우회전하는 차량에 부딪힐 뻔한 적도 있었다. 우회전하려던 차량이 횡단보도의 녹색신호를 보고도 정지하지 않아 생긴 일이지만, 보행자인 소민이도 역시 좌우를 살핀 뒤 차가 멈춘 것을 확인하고 건너야 했다. 녹색불이 켜진 뒤, 좌우를 살피고 횡단보도를 건너라는 안전교육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계속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뇌리에는 쉽게 박히지 않는 것 같다.
아이의 수영 수업이 끝나면 저녁 6시가 넘는다. 소민이와 친구들 대여섯 명이 무리 지어 우르르 체육센터에서 나왔다. 얼마 전까지는 날씨가 서늘하기도 하고 어두워서 각자의 부모님들이 데리러 오시곤 했다. 그러다 요즘 해가 길어지면서 한 분, 두 분, 수영장에 더 이상 데리러 오시지 않게 되었다. 부모님들이 데리러 오지 않자, 어린이들끼리 00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가자고 약속을 정하더니 놀기 시작한 게 지난달부터 여러 번이다. 매번 아이 수업마다 수영장에서 기다리던 나는 자연스럽게 10살 여자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 놀이터에 동행했다.
어제는 한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수영장에 왔다. 놀이터로 향하는 아이들은 자전거 속도에 맞추어 뛰기 시작했다. 흥분한 아이들이 신나게 달리다 서다 반복하며 놀이터에 도착할 때까지 횡단보도를 3번 건너는 동안 좌우를 살펴 길을 건너라는 잔소리는 단연 내 몫이었다. 놀이터에 도착했을 때, 나는 긴장감에 땀으로 샤워를 한 상태가 되었다. 몇몇 아이들의 어머님들과는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기에, 그날의 상황을 전달드렸다. 각자의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안전지도를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애들이 몰려다니면 흥분하긴 하죠~ 소민맘도 이제 수영장 나오지 말아요~ 소민이는 충분히 잘할 텐데, 엄마가 걱정이 많은 것 같은데?!"
의도와 달리 걱정 많은 엄마가 되어버렸다.
아이를 한 명만 키우고 있는 나는 다둥이 엄마들에 비해 아이와의 분리의 속도가 늦는 걸까. 한두 달 전부터 더 이상 저녁시간이 어둡지 않으니 혼자 집으로 돌아오라며 수영장에 데리러 나오지 않으시는 많은 부모님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장에 다녀서 픽업이 힘든 경우도 있고, 다른 형제자매의 저녁식사를 챙기느라 데리러 오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 나의 경우는 남편의 퇴근 또한 소민이의 하원보다 늦기에, 데리러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수영장 라이딩은 1년째 당연한 내 일상이었다.
학교나 다른 학원 일정 후 하교는 소민이 혼자 하도록 하고 있다. 평소 등하교하는 안전한 길로만 다니도록 강조해서 소민이도 따라주고 있다. 하지만 수영장 하원길만큼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집이 조금 더 멀기도 하고, 수영장 친구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려다 보면 안전한 여천길이 아닌 큰길 횡단보도를 건너야 함에 유독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부모님들이 데리러 오시든 말든, 나는 계속 수영장에서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졸지에 외동아이를 졸졸 따라다니는 엄마가 된 것 같은 시선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소민이를 믿고 안전교육을 단단히 시켜, 혼자 집에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최선일까. 내 마음이 놓일 때까지는 다른 부모님들이 어떻게 하시든 신경 쓰지 말고 등하원을 아이와 같이 하는 게 맞는 걸까. 소민이에게도 물어봤지만, 답은 이랬다 저랬다 한다. 친구들이랑 놀 생각에 혼자 오겠다고도 했다가, 친구와 헤어져 혼자가 되는 지점까지 데리러 나오라고 했다가. 자기 생각만 한다. 수영장 등하원을 아이 혼자 하도록 맡기면 내 시간은 훨씬 많아질 텐데, 그냥 한 번 맡겨봐 싶다가도 그러다 작은 사고라도 나면 모든 게 내 잘못일까 봐 두렵기도 하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은 소민이나 나나 똑같다. 수영장 가는 날마다 고민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