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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Mar 19. 2024

주간 새미일기

2024.03.11(월)~2024.03.15(금)

2024.03.11 (월)

오늘은 결혼기념일이었다. 반차를 쓴 남편과 점심을 먹고, 인생네컷을 찍고, 남편 출장용 백팩을 사고(남편이 무척 맘에 들어하는 가방을 찾아서 내가 다 뿌듯!),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이었지만, 아이들 없이 우리 둘만이 보내는 시간이라 특별했다. 연애 때 하던 소란스러운 선물도, 꽃도, 편지도 없었지만 우리는 이 평범한 시간을 감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소란스러운 선물을 좋아한다. 오해말길!ㅋ) 우리는 그렇게 7년 차 부부가 되었다. 당신과 부부라 좋다.


2024.03.12 (화)

어젯밤 아이들과 영화 한 편을 보았다. 결혼기념일을 핑계 삼아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을 편하게 보내보려는 흑심이었다. ㅋㅋㅋ 우리는 디즈니의 피노키오 실사판 영화를 보았는데, 익히 아는 얘기였음에도 (디즈니의 피노키오는 내가 비디오테이프를 갖고 있을 정도로 내가 어릴 적 자주 보았던 애니메이션 중에 하나였다.) 너무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았다. 마치 어릴 적 읽었던 ’ 어린 왕자‘를 성인이 되어 읽었을 때 새롭게 다가온 부분들이 많았던 것처럼 말이다. 피노키오가 이렇게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이야기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피노키오는 인형으로 만들어졌지만 제페토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은 푸른 요정이 찾아와 움직이는 소년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는 아직  real boy가 아니라 almost real boy다. 요정은 진짜 소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피노키오의 질문에, 진짜 소년이 되려면 시련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련을 거쳐 용감하고(brave), 정직하며(truthful), 남을 먼저 생각(unselfish)하는 아이가 되면 진짜 소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피노키오는 실제로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련을 겪기 마련인 것 같다. 하지만 마냥 시련을 겪기만 한다고 좋은 사람(진짜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양심을 따라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옳은 것을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면 진짜 소년들도 당나귀가 된다. 진짜 소년들이 인간이 아닌 동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심오한 메시지를 던지는 만화였다니!!! 혼자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제 아이들과 (더빙으로) 함께 보았던 피노키오를 오늘 혼자서 (원어로) 다시 보았다. 두 번 보니까 또 다른 부분이 눈에 띄었다. 피노키오가 그렇게 시련을 겪고 그 안에서도 양심을 따라 옳은 선택을 해서 진짜 소년이 될 수 있었지만, (실사판 영화에서는 진짜 소년이 된 부분을,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더하기 위해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다.) 어쩌면 피노키오가 ‘진짜’가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제페토 할아버지가 그를 ‘진짜’로 대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노키오를 찾기 위해 키우는 고양이와 물고기까지 데리고 (이 엄청난 생명존중!) 길을 떠난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가 갔다는 섬에 가기 위해 목숨처럼 아끼던 벽시계들을 모두 팔아(말하자면 전 재산을 팔아) 배 한 척을 사서 떠난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이미 피노키오를 인형 하나가 아니라 사람 한 명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사람이 아니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아들처럼 말이다. 내가 얼마나 진짜인지도 중요하지만, 날 진짜로 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진짜 사람이지만, 정말 진짜처럼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양심을 따라 옳은 것을 선택하는 진짜 사람. 나는 그러한 사람인가 돌아보게 하는 영화. 나는 내 아이들을 ‘진짜’로 대해주고, ‘진짜’로 키우고 있는가 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2024.03.13 (수)

[김여름 배변훈련 일지]

이제 소변은 완전히 가리기 시작했고, 기저귀 안 한 지도(밤기저귀 포함) 꽤 됐다. 놀랍게도 이불에 실수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첫날엔 바지에 엄청 싸더니 이젠 팬티에 찔끔하는 일도 없다. 다만 대변이 마려울 때 엉덩이 아프다며 동동거리고 쉽게 변을 보지 못하는 건 좀 답답하지만, (그래서 두 번이나 3일 만에 대변을 보았는데) 3일째 ‘매일’ 정상변을 봤으니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집이 아닌 이모네서도 두 번이나 대변을 보았으니 아주 고무적이다. 그러고 보니 너 기저귀 땠구나 여름아 ㅋㅋㅋㅋㅋㅋ 배변 훈련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 기저귀를 땠네! 잘했다 김여름!!ㅋㅋ


엄마가 아는 아줌마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를 ‘작가’라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말 그대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무슨 작가야 내갘ㅋㅋㅋㅋㅋㅋ 그냥 일기 쓰는 건데!!ㅋㅋㅋㅋ” 내가 펄쩍 뛰자 엄마는 “그래~ 그냥 브런치 작가라고 했어~”라고 했다. 그래, 아마 엄마는 아주 캐주얼하고 가볍게 한 이야기일 테다. (자랑하는 말투도 절대 아니었을 거다. 울 엄마는 절대 딸자랑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나를 책이라도 한 권 낸 전문 작가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작가’라는 단어를 내 앞에 붙였다는 것에서, 왠지 모르게 거짓말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력서에 갖고 있지도 않은 자격증을 거짓말로 써낸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엄마가 그렇게 말해준 것이 좋았다. 나도 나를 작가라고는 절대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엄마가 내가 이렇게 꾸준히 글을 (그게 일기라고 할지라도) 쓰는 것을 인정해 준 것 같아서였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칭찬에 아주 인색하신 분들이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칭찬(인정)을 받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아이였다. 심지어 나는 다른 부모님들이었더라면 칭찬을 했을 만한 일들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이런저런 상들을 늘 받아오고, 몇 년씩 학교에서 반장이 되어도 부모님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 나는 그 정도는 칭찬받을 일이 아닌 줄 알았는데, 친구네 집에 갔다가 벽에 상장이 (그것도 상장이 아니라 반장임명장이었던 것 같다.) 액자에까지 넣어 벽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더랬다. 나는 상장이 너무 많아서 파일에 담아두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부모님께 이렇다 할 칭찬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부모가 되었다. 애가 둘이나 있는 다 큰 어른이지만, 여전히 부모로부터 받는 인정은 값지다. 다른 누군가의 인정보다도 말이다. 울 엄마가 날더러 글을 잘 쓴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쓴다. 그래서 작가라고 말한 것뿐인데....ㅎㅎ 모르겠다. 그냥 엄마로부터 글 쓰는 이로 인정을 받은 것만 같아 거짓말 같은 그 말이라도 기분이 좋았다. 그랬다.


2024.03.14 (목)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그렇다. 예쁜 옷보다는 편한 옷을 선호하게 된다. 그게 애 보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식같이 특별한 날이 아니면 옷을 '차려'입을 일이 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결혼기념일날 오랜만에 가지고 있는 '생활한복'을 꺼내 입었더랬다. 한동안 '한복'에 푹 빠져서 생활한복을 엄청 사 입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육아를 하면서 생활한복들을 입게 되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서 많이 정리했었는데, 그래도 아까워서 가지고 있는 여러 생활한복들 중에 하나를 골라 입어보았다. 저고리에 허리치마를 입고 스타킹에 구두까지 신었다. 특별한 곳을 가거나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옷을 차려입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새삼 오랜만에 느꼈다. 옷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햇볕도 쨍하고 해서, 해바라기가 잔뜩 그려진 노란 허리치마를 정말 오랜만에 꺼내 입었다. 사실 딱히 그 옷을 입고 갈 데도 없고, 누굴 보여줄 일도 없었지만 그렇게 옷을 차려입은 것 자체만으로도 나 혼자 기분이 참 좋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종종 이렇게 차려입는 것도 좋겠다고 말이다.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내가 나를 가꿔준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더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화사하고 예쁜 옷을 입으니 아이들도 좋아한다. 이제 둘째도 제법 커서 내가 뒤치다꺼리할 일이 줄었으니 약간은 불편해도 예쁜 옷을 입는 게 할만하다. 옷장 속에 가지고 있기만 하면 뭐 하나 (게다가 다 비싸게 주고 산 옷들인데) 자주 꺼내 입고 기분전환 해야지^^ 


2024.03.15 (금)

가을이는 이것저것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 자기가 그린 그림이나 만든 작품들을 잘 선물해주곤 한다. 거의 매일 같이 유치원에서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들어 와서 선물이라고 나에게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심지어 어제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였다. "엄마 미안해~ 오늘은 유치원에서 엄마 선물 못 만들어와서~" 나는 당연히 전혀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매일같이 주던 것을 하루 빼먹은 게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그만큼 자주 나는 아이에게 선물을 받는다. 그런데 지난번에 (몇 달 된 것 같다.) 아이가 나에게 하얗고 조그만 솜뭉치를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엄마~ 이거 선물이야~ 이걸 문지르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져~" 어디서 미술활동하고 남은 솜뭉치를 조금 떼어다가 그런 스토리텔링을 얹어 나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그 솜뭉치를 부엌 서랍장에 넣어놨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내가 몇 달동 안이나 그 조그만 솜뭉치를 버리지 못했다는 거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익히 잘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뭐든 '버리는' 것을 잘한다. 아이가 그동안 그린 수많은 그림들과 만들기 한 작품들을 나는 한동한 전시해 두었다가 대부분 많이 버렸다. 그림들을 몇 가지 선정해 파일에 넣어두기는 하지만 만들기 한 작품들은 입체적이라 보관하기엔 자리차지를 너무 많이 해서 대부분 버린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글씨연습을 해온 것도 하나도 놔둔 것이 없다. 다 버렸다. 그런데 이 솜뭉치가 뭐라고, 내가 몇 달을 이 서랍에 넣어두는 건지 모르겠다. 그 솜뭉치에 가을이가 색칠을 한 것도 아니고, 이건 작품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저 솜 조각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게 정성 들여 만든 크고 작은 여러 작품 들을 과감하게 버린 내가 왜 이 솜뭉치를 버리지 못하는 걸까. 모르겠다. 작아서 자리차지를 많이 하지 않아서도 있겠지만, 왠지 내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담긴 것만 같아 그런 것 같다. 자기가 좋아서 오리고 색칠하고 붙여서 놀잇감으로 만든 멋진 작품들보다 그 아무것도 아닌 솜뭉치가 더 값어치 있게 여겨졌던 이유는 아이의 그 말이 얹어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아이는 기억도 못할 테다. 그저 놀다가 솜 한 귀퉁이를 툭 떼어 나에게 건네어주면서 해본 말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정말로 믿었나 보다. 진짜로 그 솜뭉치를 문지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 것만 같다고 믿는가 보다. 가을이 네가 이루어줄 것만 같다. 그래서 그 솜뭉치는 아직도 내 주방 서랍장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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