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마음이 근육이 약해도 괜찮아.
지난 설 연휴에 둘째가 B형 독감으로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그때 아이는 복통을 심하게 호소했었다. 퇴원하고 아이가 나아졌었는데, 며칠 전부터 아이는 또 배가 아프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입원을 했을 때처럼 오열을 하면서 아파하는 것은 아니었다. (입원 당시에는 똑바로 서있지 못할 정도로 아파했었다.) 처음에는 배가 아프다는 말과 함께 아이는 화장실을 갔으므로 나는 변이 마렵다는 표현을 배가 아프다는 말로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자다가 깨서도 배가 아프다고 안방으로 넘어오고, 설사 증세까지 보이자 나는 마음이 더없이 어려워졌다. 사실 배가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한 즈음에 아이는 뜨거운 프라이팬을 만져 손끝에 2도 화상을 입는 일이 있었다. 그 바람에 아이와 나는 화상전문병원을 오가게 되었다. 아이가 화상을 입은 것도 마음이 불편하고 힘든데, 배까지 아프다고 하기 시작하니 나는 마음이 너무 심란해졌다.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의 배 아프다는 말에 트라우마가 생긴 듯했다.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아가던 그날을 상기하며 나는 그때의 어려움이 다시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제대로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면 아이가 더 크게 아프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면서도, 무얼 어떻게 해줘야 할지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아이가 화상을 입은 것도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내가 부엌에서 요리를 할 때마다 나에게 안아달라고 하면서 요리하는 것을 구경하고 싶어 하고, 야채를 씻거나 반죽을 섞는 것과 같은 일들을 아이는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스텝스툴을 사주었고, 그 스텝스툴을 사자마자 아이와 함께 펜케이크를 만들다가 아이가 프라이팬에 손을 덴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프라이팬을 볼 때마다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자기가 뜨거운 것을 만져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나는 내 잘못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픈데 그런 나에게 오히려 아이가 미안하다고 하니, 더 마음이 괴롭고 죄스러웠다.
마음이 그렇게 불편해서였을까. 나에게도 위경련 증상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명치 아래가 콱 막힌 것 같고, 음식들을 잘 소화해내지 못해 힘들어했다. 그러다 나도 아이처럼 설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좋아하는 책에도 집중하지 못했고, 어느 것 하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우울감이 찾아왔다. 난 이런 내가 싫었다. 아이가 아프고 힘들어할 때일수록 내가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물러터져서야 어디다 쓰겠느냔 말이다. 내 마음의 근육은 언제 커지는 것일까, 이 정도 일로 이렇게나 몸과 맘이 흔들리면 어쩌라는 것인가… 마음이 무른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나는 그런 나의 마음을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동네 엄마들에게 나누었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언니가 무척 공감을 해주었다. 자기도 그렇다며…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나도 마음의 근육 안 커… 근데 분명한 거는 옛날보단 커졌는데 원래 너무 작게 태어나서 남들과 비교할 때 한없이 없어 보이는 거야… 근데 옆에 좋은 사람들이 그걸 보완해 주고, 다시 일어나게끔 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니, 혼자 짊어지지 말고 나눠 들며 살아가자. 완벽하게 안 해도 돼! 새미야! 너는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단단한 사람이야! 이미 그런 사람이야! 힘내자.” 아… 나는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이다가 이 카톡을 보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런 공감과 이런 격려라니 ㅠㅠㅠ 나눠 들며 살아가자고 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ㅠㅠㅠ 이 얼마나 감사한지… ㅠㅠ 같은 카톡창에 있던 다른 언니와 동생도 나를 무척이나 공감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너무너무 고마웠다. 다시 무언가를 해볼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걱정만으로 속앓이 하기를 멈추고, 아이를 일찍 하원시켜 소아과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아이용 유산균도 구매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증상을 듣고서, 아이도 나처럼 신경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다. (그런 것도 엄마아빠를 닮았나 보다.) 장이 예민한 아이인데, 화상을 입고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한 탓에 배가 아팠을 수 있다고 말이다. 속이 편해지는 약을 처방해 주시고는 좀 더 지켜보자 하셨다. 그래도 너무 아파하면 다시 오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이도 나처럼 마음이 어려워 몸이 아팠던 거라 생각하니 배가 아프다고 하던 아이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원래도 감각이 예민한 아인데, (촉각, 청각 등이 예민한 편이다.) 손끝에 화상을 입었으니 신경이 쓰지이 않을 수가 없었을 테다. 게다가 엄마가 이토록 불안해하는 걸 아이가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서였을까. 아이도 소아과에 다녀온 후부터는 배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주 금요일, 나는 평소처럼 운동을 하러 갔다. (나는 필라테스를 한다.) 운동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맞다. 근육이 크려면 아파야 하는구나. 몸의 근육을 키우려면 이렇게 아프고 힘든 시간들을 견뎌야 하듯이, 마음의 근육도 커지려면 아프고 힘든 시간들을 견뎌야 하는 것이구나. 내가 이 시간들을 지나고 나면 내 마음의 근육도 조금은 더 커지겠지… 싶다. 그래, 몸의 근육을 키우겠다고 일부러 돈 내고 시간 들여 이렇게 운동도 하는데,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수업비를 낸 것이라 생각하자… 했다.
나는 마음이 어려운 한 주였는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를 위로해 주었던 그 엄마들과 만나 맛난 것도 먹고 장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주에 교회 목사님도 우리 집에 찾아오셨고, 친한 동생도 내가 보고 싶다며 1시간을 운전해 왔다. 게다가 그 동생은 밸런타인데이라며 커다란 초콜릿케이크와 첫째 입학선물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온 것이었다. 나는 찾아와 주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 나누고, 나를 생각해 주는 선물로 마음에 달달함을 채웠다. 언니 말대로 혼자 짊어지지 않고 나눠 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 뭐 마음의 근육 좀 없으면 어때. 이렇게 내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선척적으로 마음이 예민하고 여리게 태어났지만, 괜찮다. 그러니 나를 닮은 아이야, 너도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