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새미 Jul 15. 2021

읽을 줄 몰라도 편지를 써줄게

4살배기딸에게 편지를 썼을 때

나는 편지를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책’ 하면, 나는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묶은 ‘반고흐, 영혼의 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가 그 수많은 편지들을 쓰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마 그를 지금처럼 사랑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편지의 힘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손으로 쓰는 편지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느리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손으로 글자를 쓰는 일은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글자를 쓰는 사이사이 계속해서 내가 적어내려갈 내용에 대해서 곱씹게 된다. 그것은 대부분,  내 마음이 어떤지 그리고 네 마음이 어떨지에 대한 것이다. 내 마음을 내가 다 아는 것 같았는데, 쓰다보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새로운 내 마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그렇게 또 내 안에 남는다. 


그렇게 표현된 마음이 편지라는 형태로 상대에게 가 닿는 것은 아주 매력적인 일임으로, 기왕이면 자주 편지를 쓰려고 애쓰는 편이다. (애써도 되지 않는 것이 많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특별히 남편에게 쓰려고 애쓰는데, 남편에게는 주로 말로 마음을 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적인 감정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나온 말들로 남편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다. 결국 차분히 앉아 편지를 쓰는 것이 ‘진짜’ 내 마음을 드러나게 하는 일임을 안다. 편지를 쓰게 되면 사실은 많이 고맙고, 사실은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비로소 이야기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를 임신 중에 있는데다 첫째 육아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다보니 서로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 날들이 많았던 것 같아,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퇴근한 그에게 편지를 전해주는데, 아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 약간의 서운함을 내비친다. 자기는 왜 안주냐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는 너에게도 써주겠다고 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데 편지는 뭐하러’ 하는 생각과 동시에 ‘괜히 아빠만 주고 자기는 안주니까 샘이 났나보다’ 했다.


다음날 또 남편에게 편지를 써주었는데, 아이가 먼저와 대뜸 받아간다. “가을이 선물이야?” 하길래, 네 것이 아니라 아빠에게 주는 편지라고 말하자 아이의 서운함이 폭발했다. 눈물까지 그렁그렁 거리면서 왜 자기는 안주냐고 자기도 편지 써달라고 이야기 하는데, 아차 싶었다. 써주겠다고 해놓고도 써주지 않았던게 미안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엽서를 한 장 꺼내와 짧은 편지를 썼다.


사실 3돌도 안된 아이라 글자를 읽을 줄 모르니, 편지를 쓰는게 별로 의미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까지 편지를 받고 싶어할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읽을 줄도 모르는 글자만 써있는 종이에 관심을 보일줄이야… 그래도 약속한 것이 있으니 써보았다. 너에게 편지를…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짧게 쓴 편지를 아이에게 건냈다.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너무너무 좋아했다. 자기도 편지를 받았다며 설레어하는 그 표정은,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아이는 앉아서 엽서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글자를 읽을 줄은 모르지만, 아이는 그 안의 마음을 읽는 듯 했다. 열심히 들여다보는 아이에게 “엄마가 읽어줄까?”했더니 또 환하게 웃으며 좋다고 한다.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어주었다.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아이는 내 눈을 바라보며 “응”하고 대답을 한다. 그 얼굴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어떤 놀이를 함께 할 때 보다 더 설레고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이다.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편지가 글자로 그리고 그 글자가 목소리로 전해질 때 ‘환희’가 일었다. 그 말을 전하는 나와 그 말을 받는 아이 사이에 사랑이 흐르는게 뚜렷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행복해 하는 그 모습을 보는데, 내가 더 행복했다. 편지를 쓰면 대부분 상대는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편지를 읽으니 어떤 반응이었는지 볼 수 없지만, 아마도 내 편지를 받고 가장 행복해 한 사람이 이 아이가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이럴일이었던가.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아이에게 써주는 편지가 이렇게 강력한 것이었던건가. 그 짧은 순간이 나에게는 무척 놀랍고 새로웠다. 그래, 그런것이었구나. 편지의 힘이란, 마음을 전하는 힘이란 이렇게 강력하고 아름다운것이었구나 새삼스럽게도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 너에게도 편지를 왕왕 써주어야겠다. 내 마음을 그렇게 너에게 전해주어야겠다. 글자를 읽지 못하면 어떠랴. 누구보다 내 편지에 감동하고 행복해주는 너인데, 그 안의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읽어주는 너인데. 늘 고맙고 사랑하지만 일상에 쫒겨 말하지 못할 때마다 너에게 연필을 들어야겠다. 그렇게 끄적임으로 말해주어야겠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며칠 전 아이는 갑자기 나에게 또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아마 아이에게도 그 경험은 뚜렷한 행복이었나보다. 나만이 느낀 환희는 아니었나보다. 나의 사랑의 말이 또 듣고 싶은가 보다. 아이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가 정답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