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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l 19. 2022

복숭아 법칙

내가 이렇게 이타적인 사람이었나?

바야흐로 여름이다.

나는 원래 수박 킬러지만, 여름 대표 과일 중 하나인 복숭아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운 복숭아를 먹고 싶어, 마트에서 먹음직한 백도를 6개 사서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먹기 전부터 기대감에 설레인다. 껍질을 깎는 칼날이 부드럽게 복숭아를 스칠 때에도 복숭아 살이 많이 깎여 나갈세라 조심스럽고, 혹여나 뭉개질세라 손에 힘을 빼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한다. 달큰한 향이 올라오고 어느새 접시에 복숭아 국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다. 동그라미 모양으로 크게 한 조각 잘라 당장 입안 가득 밀어 넣고 싶지만, 웬일인지 나는 복숭아를 잘게 산산조각 낸다.


왜 그랬을까?

달큰한 복숭아 향기에 나만 설렌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살 딸내미와 돌쟁이 아들내미도 기대감이 크다. 결국 나는 아이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각각 접시에 담아서 아이들을 먹이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과일을 잘 먹는 아이들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게눈 감추듯 해치울 줄이야. "그렇게 맛있어?ㅎ" 괜히 내가 다 뿌듯하다. 복숭아가 처음인 둘째도 한 입 주기 무섭게 또다시 입을 벌리고, (씹긴 하는 거니^^;?) 첫째는 복숭아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거의 춤을 추는 지경이다.


분명 복숭아가 하나 있었는데, 없다. 첫째가  그릇을 아쉬워하며 복숭아를  달라고 성화다. 얼른 부엌으로 가서 복숭아 하나를  까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 나는 하나도  먹었잖아? 내가 먹고 싶어서  복숭아인데...' 하면서도 나는 다시 복숭아를 잘게 조각낸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복숭아를 썰어내고 남은,  주위의 살들을 알뜰히 갉아먹었다는 ! ( 번째 깎았던 복숭아까지...)


내가 이런 적이 있던가? 내가 이렇게 이타적인 사람이었나?

'엄마'라는 이름이 이렇게 사람을 바꾸나? 피식 실소가 터져 나온다. 좀 어이가 없었다.


결국 두 번째 복숭아도 아이들에게 다 빼앗기고 말았다. 사실 나도 무지 먹고 싶었다. 근데 복숭아 살을 도려내고 남은 조각으로 정말 '맛만' 보고 애들에게 나머지를 뺏겨주었다. 나도 먹을 수 있었는데, (사실 나도 먹고 하나 더 까면 되는데) 이상하게 포크는 내 입이 아닌 아이들의 입을 향했다. 심지어 딸아이 그릇에서 한 조각을 집어먹었다가 자기 복숭아를 왜 먹냐고 핀잔을 주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이상하고 요상한 일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ㅎ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고 하시는 어른들 말씀이 이런 기분인 걸까? 그런데 난 배가 안 부른데? 나는 배가 고픈데도 내 자식 배를 먼저 불려주는 마음은 갖게 되었지만, 아직 배가 부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나 보다. ㅋ 그래도 이렇게 내가 나의 기쁨을 아이에게 양보하는 부모가 되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영 이상하다.


다음날, 나는 부모님 댁에 가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저녁을 맛나게 얻어먹고 아빠가 후식으로 복숭아를 까주셨다. 까놓은 복숭아를 식탁에 올려두고 먹은 저녁상을 정리하는 부모님을 뒤로한 채, 나는 제일 큰 동그란 모양의 복숭아 조각을 왕! 입안 가득 밀어 넣는다. 원래 그건 마치 다 내 거라는 듯, 그렇게 먹다가 어제 일이 생각나서 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아, 여기서는 내가 부모가 아니고 자식이구나.' 사람이 이렇게 같은 복숭아를 앞에 두고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부모일 때와 자식일 때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내가 부모구나. 내 아이들에게 나는 부모구나.

조금은 무서웠다. 내 아이도 내가 엄마 아빠를 바라보듯, 나를 바라볼 거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무서웠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의지를 할 거란 말인가. 내가 변한 것도 조금 무섭다. 나 원래 그런 사람 아닌데, 왜 그러지? 이상한데? 그래도 복숭아를 잘 먹는 너희들이 귀여우니까 괜찮다. 내일 나는 복숭아를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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