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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Aug 02. 2022

크기 위해 아팠던 밤들

너만의 면역력을 갖추는 길

흔히들 '돌치레'라고 한다. 아기들이 생후 6개월까지는 엄마에게 받은 면역력으로  아프지 않다가, 이후 '돌'즈음하여 많이 아프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긴 듯하다. 그때부터 아이는 '자기만의' 면역력을 길러야 하는 것일 테다. 

여름이(둘째)도 그런 시기가 왔나 보다. 어젯밤부터 열이 오르더니, 새벽 내내 고열과의 싸움을 치렀다. 남편도 나도 함께 밤잠을 설쳤지만, 사실 싸움은 아이가 하는 것이었다. 나와 남편은 그 옆을 지키는 것일 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첫째 때도 이런 적이 있었던 듯하다. 그때는 제법 당황했던 우리였다. 하지만 어쩔 줄 몰라하던, 이미 겪어봐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건 사실 아이에게는 큰 차이가 없다. 대신 아파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해열제를 먹이고 찬수건을 대주는 것 정도인데, 그마저도 찬수건은 울며불며 거절하므로 해주기 어렵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해열제를 먹이고는 열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 그뿐이다.


첫째 때나 둘째 때나 고열에 힘겨워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은 여전히 괴롭다. 하지만 첫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안다는 것이다. 아이가 이 시간을 잘 견디면, 아이는 분명히 성장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른들은 '아프고 나면 큰다'는 말을 하신다. 그 말은 참말이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훌쩍 큰다. 못하던 것을 갑자기 하게 된다거나 전보다 더 똑똑해진다. (어른들은 그걸 약아진다고 한다.) 아마 몸속에서도 면역체계든 뭐든 어떤 성장이 일어났을 거다.


"No pain, no gain" 내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던 말인데, 이 말도 참말이다. 모든 성장에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안다. 몸이 고생을 해야 (아파야) 운동실력이 느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파야 성장한다. 아프지 않고서는 성장을 할 수가 없는데, 문제는 아이가 아픈 것을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데 있다. 아이가 아프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그 아픈 시간을 지나가도록 놔두어야 한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대신 아파주고 싶지만, 아이는 그 아픈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걸 알기에 다만 아이가 그 시간을 잘 견디길 바랄 뿐이다.


지금이야 고작 열이 나는 것 정도겠지만, 앞으로 아이는 더 다양한 '아픈 시간'을 겪어내야 할 것이다. 관계에서 오는 아픔, 학업이나 일에서 오는 아픔 등등 우리 삶에는 크고 작은 아픔들이 있다. 그러니 내가 너의 아픔 앞에서 그것을 대신해주지 않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네가 너의 아픔을 잘 견뎌내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부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너는 그새 목마를 혼자 흔들며 탈 줄 알게 되고, 기어가면 빠를 길도 붙잡고 서서 이동하려 애쓰고, 대답도 (마치 말을 알아들 은마냥) 더 명확하게 한다. (자기 의사를 더 분명하게 표현하게 되었달까.) 하루 밤 아프고 너는 분명 이렇게 저렇게 성장했다. 그 모습을 볼 줄 알게 된 것도 나도 나름 부모로서 성장한 것일 테다. 체온계에 뜬 빨간불에 발 동동 구르지 않고, 너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조금 더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된 것 말이다.


우리는 아팠지만, 그래서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을 지나 더 큰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 말자. 네가 이 아픔을 잘 소화시키길 기도하고, 그런 내일의 너를 기대한다. 힘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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