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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Aug 09. 2022

육아 번아웃, 아이의 말로 극복하기.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


안부(安否)

어떤 사람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아니한지에 대한 소식 또는 인사로 그것을 전하거나 묻는 일.

_네이버 국어사전









아이를 낳고 나서 머리가 나빠졌다. (그걸 아이를 낳을 때 뇌도 같이 낳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혹은 기억력이 저하됐다고 이야기하는 엄마들이 많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것은 뇌 구조의 변화 때문이란다. 예를 들면, 기억을 조절하는 해마라는 뇌 영역이 구조적 변화를 일으켜서 전화번호 같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정보는 흘려보내고 자녀의 요구 같은 중요한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일부 기억력은 떨어지지만 특정 대상에 대한 공감 및 보살핌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결국 뇌의 에너지를 육아에 몰아 쓰게 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아이를 낳은 여성은 관심의 반경이 굉장히 좁아진다는 이야기도 들은 듯하다. 반경 몇 미터 밖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심의 에너지를 아이에게 몰아 쓰게 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원래도 남들보다 나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은 편이긴 했지만, 아이를 낳고는 더더욱 남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육아에 치여, 뇌구조 변화 어쩌고에 기대어 그것이 당연한 현상이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는 하지만 가끔은 나도 새삼 느낄 때가 있다. 내 안에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아이가 둘이 되고서는 더 그렇다.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 할 대상이 둘로 늘어나게 되니, 남은 고사하고 남편에게 줄 관심과 사랑도 남아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싸운다. 그래서 얼마 전에도 싸웠다.) 남편은 고사하고 나 자신을 사랑할, 나 스스로에게 관심을 기울일 에너지도 부족하다. 그럴 땐 참 서글프기도 하다.


그런데 얼마 전 5살 딸이 아빠(남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빠! 그때 배 아프다 그랬던 거는 좀 괜찮아졌어? 이제 안 아파?" 


그 말을 듣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잉?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응? 아~ 이제 괜찮아 안 아파^^"하고 대답을 하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남편이 근래 속이 탈이 나서 며칠 고생을 했다는 것을. 아이는 그것을 기억하고 남편의 안부를 물었던 것이다.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심각한 증세는 아니었어서 관심 순위가 저 뒤로 밀려나 있던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아빠의 눈을 보며 따스하게 묻는 그 말에 두고두고 마음이 먹먹했다. 


내 남편인데 나는 저렇게 따스하게 묻지 못한 그 안부가, 물을 생각도 하지 못한 무심함에 얹혀 그에게 닿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내 머릿속 저 깊숙이에 분명 있었을 텐데, 너무 깊이 가라앉아 차마 꺼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이 덕분에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름의 반성을 하며 미안하면서도, 아이가 고맙고 기특하다. 내가 묻지 못한 안부를 대신 물어봐 주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안부를 묻는 마음이 저렇게 따스했다는 것이 고맙고 기특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으라고 가르쳐 준 적이 있었던가. 감기에 걸려 유치원에 나오지 못한 친구가 있다는 말에, 그 친구가 다시 나오면 "감기 다 나았어? 이제 괜찮아?"하고 이야기해보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던 듯도 하고 없었던 듯도 하고... (이런 망할 기억력 감퇴...)


어쨌거나 나는 내가 사는 게 벅차서 그런 따스한 마음까지는 가르쳐주지 못했던 것 같은데, 아이가 그런 마음을 보여줄 때면 참 고맙다. 결국은 내가 쏟은 마음이 아이 안에 차곡차곡 쌓였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도 내 욕심이려나) 지난주 아이 방학과 내 감기가 겹쳐 험난한 한 주를 보내고, 육아 번아웃이 왔다. 아이들에게 다 쓰고 내 마음은 텅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는데, 그래도 다행히 그 마음들이 어디로 새지 않고 아이 안에 쌓였었나 보다. 그리고 그것을 또 다른 이에게 흘려보내는 아이 덕에 다시 내 마음도 그 마음을 받은 그의 마음도 넉넉히 채워진다. 나만 퍼주고 있다고 생각한 사랑이 이렇게 가족 안에 돌고 돈다. 


한 집에 같이 살며 매일 보는 식구에게도 다 관심을 주기가 어렵다. 나는 내 사랑이 모자라 헉헉 거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또 같이 사는 다른 식구가 채워 준다. 이번에는 그게 5살 딸아이였다. 육아에 허우적대다 보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만 같고, 에너지가 달린다. 아이들은 내 몸과 마음에 빨대를 꽂고 에너지를 쏙쏙 뽑아가는 거대한 모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리고 그게 참 버겁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아이도 나를 다시 채워줄 때가 많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채워주는 아이를 본다. 아이는 다음날, 지난번 배가 아프다며 헤어졌던 사촌오빠에게도 같은 안부를 물었다. 이번에는 그 따스한 사랑이 안부를 묻는 말을 타고 우리 가족 밖으로까지 흐른다.


사실 나는 너에게 차갑게 식은 마음을 줄 때도 많았던 것 같은데, 네가 그렇게 따스해서 다행이다.


오늘도 네 사랑 덕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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