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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l 08. 2022

감정의 변기통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주는 사람

내가 늘 남편에게 고마워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는 점이다.


나는 외향적인 데다 사랑받기 위해, 매력적이기 위해 상당히 애를 쓰는 부류 중에 한 사람이다. 그래서 즐겁고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다. 사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보통 그런 모습이 더 많은 편이기는 하다. 참고로 나는 ENFP다. (요즘은 다 이렇게 자신의 성향을 표현하길래.)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늘 밝고 긍정적이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와 반대되는 감정들이 쌓였을 때, 나는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드러냈을 때에도 나를 사랑해줄 것 같은 사람, 나는 그런 사람에게만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서 한 가지 문제점이 더 발생하는데, 대부분 그런 사람은 '가족'이고 (나와의 연을 쉽게 끊을 수 없는 사람) 늘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 번 받아줬던 사람에게 계속 보여주는 식이다.


게다가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조차 스스로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한 날것의 그 날카로운 감정들을 (우울, 짜증, 슬픔, 걱정, 부담 뭐 이렇게 많은 마이너 한 감정들 중에서도 나는 특히 '화'가 많은 편이다.)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나에게는 사실 매우 두렵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왔는지 얼만큼인지도 모르는 그 미지의 것을, 어둡고 일그러진 그것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사랑은 받고 싶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그때그때 드러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참고 참고 또 참았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내 안에 담아두기 어려워졌을 때 터트려지는 방식으로 드러나게 된다. 마치 이것은 토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속이 꼬이고 안 좋아 토가 마렵다. 그런데 그 토를 보여주기 싫으니, 억누르거나 모른 척한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토는 어느 순간 입 밖으로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들은 입, 즉 말로 터져 나온다.)


내가 토해내는 감정들을 보면서도 나의 등을 토닥여 주는 사람. '그럴 수 있었겠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남편이다. 즉, 내가 주로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토해내는 사람이 남편이다. 물론 남편도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쉽게 받아주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는 나의 그 일그러진 마음들을 들어주고 인정해주고받아준다.


부정적인 감정을 토해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는 그렇다.) 토를 하고 나면 속은 편해질지언정 목이 따끔거리고 힘들어 눈물이 나온다. 감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토해내긴 했는데, 그래서 무언가 해소되기는 했는데, 미안함이 남는다. 그게 참 쓰리다.


소중한 당신을 내 감정의 변기통으로 쓴 것만 같아서, 그런 내 자신이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아내거나 점잖게 표현하지 못하고 이런 일그러진 모습으로 토해내는 나를 언제나 어여쁘다 해주는, 그리고 사랑해주는 당신에게 늘 고맙다.


내가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나에게 찾아온 이 부정적인 감정들도 아름답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사람이 되면 좋을 텐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될 때까지 당신이 나와 오래도록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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