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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Nov 14. 2022

나의 육아는 로제떡볶이다.

둘째를 낳고 첫째가 순한 맛이었다는 걸 알았다.

둘째를 낳기 전, 첫째를 데리고 집 근처 북카페에서 동네 아이 엄마들과 그림책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 또래가 비슷해 금방 친해지게 되어 서로 집에도 놀러도 가고 그랬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우리 집에 모여 놀게 되었는데, 엄마들이 하나 같이 놀라워했다. 거실 바닥에 화분들을 놓아둔 것 때문이었다. 당시 첫째가 3살쯤이었는데, 아이가 화분을 건들지 않느냐는 엄마들의 질문에 내가 한 번도 없다고 대답하자 화분이 놓여있다는 사실보다 아이가 만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에 놀러 온 또래 아이들은 바로 화분으로 달려들었다. 화분 이슈를 통해 엄마들은 우리 아이를 신기해 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안전문을 해놓지 않은 것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보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물을 만지는 통에 힘들다는 하소연을 쏟아내었다. 이 역시 나는 고민조차 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아이는 화장실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을뿐더러 한 번도 변기를 만진 적이 없었다. 부엌 하부장도 열려고 한 적이 없어 식칼을 하부장에 넣어두고 썼고, 전자레인지랑 전기밥솥도 하부장에 있었는데 한 번도 흥미를 보인 적이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다른 엄마들이 우리 아이를 마냥 신기해하고 이런저런 하소연을 해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을 내가 이해할리가 만무했다. 첫째는 그랬다.


비록 첫째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둘째를 낳고 키우는 지금 그때 그 엄마들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 있다. 둘째는 첫째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흔한 놀이매트도 안전문도 없이 첫째를 키웠던 나는, 둘째의 저지레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둘째의 만행은 이러하였다.


베란다에 있던 작은 화분들은 장난감으로 두들겨 패서 높은 곳으로 대피시켰고, 안방에 있는 큰 화분 속 돌멩이들은 침대 속이나 서랍 속에서 발견되곤 했다. (눈에 보이는 곳에 던져 놓은 돌멩이들은 금방 찾아 되돌려놓는다.) 첫째 키우면서는 쓰지 않았던 안전문을 화장실에 설치했고, (정말 화장실에 들어가면 변기 물로 장난부터 치더라.) 부엌 하부장을 열어 온갖 것을 끄집어내기에 아이가 쉽게 열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설치했다. (그 안전장치는 중문에도 달았다. 그러고 보니 첫째는 중문을 열고 나간 적이 없었다.) 식탁의자를 이용해 식탁 위에 올라가는 것은 물론(다반사) , 못 본 사이 좁은 화장대에도 올라서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유아 차에서 일어서는 것은 물론, 멈춰있거나 그냥 답답하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유아 차에서 내려오려고 한다. (이동 중에도 자주 시도한다.) 그렇게 내려서 혼자 잘 걸어 다니면 좋으련만, 이앓이와 안아병 콤보로 걸핏하면 안아달라 한다. 문제는 그맘때 첫째는 덩치가 작아 가벼웠는데, 둘째는 아니다. 10킬로가 넘는 애가 맨날 안아달라 성화니 미칠 노릇이다. 아이들이 음식을 먹다 흘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주스가 담긴 컵을 일부러 거꾸로 흔들어 흘리고는 손으로 첨벙거리고 있는다던가 먹던 바나나를 소파에 뭉개 펴 바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갑자기 피가 역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느껴볼 수 있다. 얼마 전엔 식탁에 올라가 그릇을 냅다 식탁 밑으로 밀어버려 그릇이 깨지고 말았다. 실로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순간 화가 나지만, 화를 낼 겨를이 없다. 아이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면서 얼른 깨진 그릇을 치우고 청소기를 밀고 부엌 전체를 걸레질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등원 전쟁 속에 이 난리를 치르고 나면 얼이 빠진다. 이럴 땐 피가 다 몸 밖으로 빠져나간듯한 느낌을 느껴볼 수 있다.


이렇게 줄줄이 나열하면서도 허탈한 것은 아이는 계속해서 자란다는 것이다. 점점 더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저지레의 수준도 높아진다. 문을 스스로 열 줄 알게 되면서 못 들어가게 문을 닫아놓는 것이 무의미해졌듯이, TV 본체 전원 버튼의 존재를 알게 되어 리모컨을 닿지 않는 곳에 두는 것이 무색해지는 등 아이의 저지레는 점점 막을 수 없는 것이 되어가는 듯하다. 뭐 저지래 이외에도 잠투정이 심하고 자다가도 잘 깨는 것 그리고 안아병&징징 콤보까지 둘째는 좀 매운맛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첫째는 순한 맛이라는 거다. 어릴 때 저지레를 별로 안 했던 것은 물론이고, 미운 4살도 없이 지나간 데다 5살인 지금도 말을 너무 예쁘게 한다. 


나는 소위 말하는 ‘맵찔이’(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사람)다. 그래서 그런가 모두가 좋아하는 떡볶이도 그리 당기는 적 없이 살아왔는데,  얼마 전 로제 떡볶이를 처음 먹어보고는 종종 그 맛이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었다. 매운 고추장에 크림이 섞이니 부드럽게(?) 매워 맛났다. 지금 나의 육아도 그런 로제 떡볶이와 비슷한 것 같다. 둘째는 매운 고추장이지만, 첫째의 순한 크림이 섞였으니 말이다. 힘든 건 사실이지만, 첫째 둘째 서로 다른 그 매력으로 또 육아의 다른 맛을 알아간다. 떡볶이가 최애는 아니지만 다양한 떡볶이의 매력을 알아가듯, 육아가 최애는 아니어도 그 다양한 매력을 알아가는 중이다. 지금 이 시기에만 맛볼 수 있는 맛이니 맵고 힘들어도 그 맛을 음미하고 즐기는 내가 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아 그나저나 로제떡볶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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