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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Nov 13. 2022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딸 하나, 아들 하나. 애가 둘 아빠니까.

나는 남에게 남편 욕을 한 적이 별로 없다. 그건 내가 잘했다기보다, 남편이 욕먹을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남편이 잘한 것이다. 남편은 가사와 육아를 잘하는 편이다. 아이들 목욕시키는 것부터, 아이 둘 데리고 식당 가서 밥 먹고, 키즈카페 가서  몇 시간이고 놀고 오는 능력도 가졌다. 음식물 쓰레기통이 가득 차면 비우고, (음식물 쓰레기통이 가득 찼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부엌일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으면 얼른 설거지를 하고, 심지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딸아이 유치원 실내화를 빨아놓는 센스를 지녔다. 내 주변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거리가 많은 남편이다. 



그런 남편에게도 가끔 너무 화가 날 때가 있다. 사실 나는 기본적으로 화가 많은 사람이라 (나는 육아 우울증이 오는 게 아니라 육아 화병이 온다.) 내가 저기압이 되면 별 것 아닌 걸로도 화를 잘 내는 편이긴 하지만 이건 나의 저기압을 고기압으로 바꾸는 그런 일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사랑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런 아이들과도 24시간 매일매일 붙어있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나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혼자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외로움 잘 타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애를 낳고는 사람이 바뀌었다. 미친 듯이 혼자이고 싶다. 제발 외롭고 싶다. 간절하게. 뭘 해도 혼자 하면 행복할 것만 같다. 남편이랑도 서로 설거지를 하고 싶어 한다. 설거지는 혼자 하지만, 설거지를 안 하고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하는 한이 있어도 혼자이고 싶은 것이 육아의 세계인 것이다. 이렇듯 육아의 세계에서는 절대 혼자일 수가 없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문 밖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기에, 육아하다가 지치면 회사 나가는 남편마저 부럽다. 출근 지옥철에서 혼자 보내는 1시간 마저 부러운 지경에 이른다. 지옥철이어도 애 없이 혼자 이기 때문이다. 애를 먹이는 시간보다 애가 흘린 걸 닦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듯한 내 점심시간과는 다른 (내 밥은 어디로 뭘 먹었더라) 애 없이 밥을 먹는 남편의 점심시간이 부럽고, 혼자 훌쩍 떠나는 출장기간이 부럽다. 물론 나도 직장생활을 해봤기에 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도 그 안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들에게 너무 치이다 보니) 애들과 같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자체가 부러운 지경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회사를 나가서 내가 혼자 육아를 담당하는 시간은 내가 감당한다 쳐도, 퇴근 후 저녁이나 주말처럼 ‘같이‘ 육아를 담당하는 시간대에 혼자서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면 신경이 곤두선다. 오늘도 오전에 남편이 치과를 다녀온다 했다. 함께 공유하는 캘린더 어플에 등록해놓은 일정이었다. 매일 그때그때 캘린더를 확인할 정신이 없는 나는 그 일정을 모르고 있다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오늘이었어?') 그러라고 했다. 시간이 없어 미뤄왔던 충치 치료였다. 내친김에 남편이 치과 치료가 끝났을 즈음 애 둘을 데리고  아이 옷을 사러 나가면서, 남편 보고는 집에 들어가 쉬고 있으라 했다. 호기롭게 자유시간도 주었는데 집에 돌아왔더니 내일은 친구 결혼식이란다. 


거기서 김이 팍 샜다. 친구가 결혼을 하는 게 잘못도 아니고 거기 가겠다는 게 잘못도 아니지만, 친구 결혼식을 당연하게 혼자 가겠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났다. (혼자 갈 생각으로 나에게 일정을 공유한 거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그랬다고 했다.) 나는 올해 자궁경부암 검진 대상자라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아이를 언제 맡길 수 있을지 몰라 예약도 망설이고 있는데, 왜 그는 당연하게 결혼식을 혼자 간다고 전제한 것일까? 나는 모든 일을 할 때 아이를 데리고 하거나 아이를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해야 하기에 어떻게 데리고 가나, 누구에게 맡기고 가나 늘 그게 고민인데 왜 그는 아닐까? 나에게 내일 친구 결혼식이라고 말하고 가버리면 그만인가? 자기가 미혼이야 뭐야. 애가 없는 것도 아니고 애가 둘이나 있는 애아빤데 왜 너는 혼자 가는 게 당연한 거야? 나는 그게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요즘 남편이 부쩍 다운되고 힘들어해서 애써 에너지를 끌어올려 버티고 있었는데, 남편의 그 말에 갑자기 땅으로 팍 꺼지는 느낌이다. 다 놓아버리고 싶다. 왜 애들은 다 내 책임인 것만 같지? 같이 낳고 키우는 애들인데 왜 둘 다 나에게만 매달려 있는 것 같지? 나는 애 둘을 둘러업고 있느라 버거운데, 왜 너는 혼자 홀가분하게 서있는 것 같냐는 말이다. 너무 화가 나서 집을 나왔다. 애 둘을 너에게 맡겨버리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우리 집, 여기를 벗어나야만 내가 혼자 일 수 있으니까. 


요즘 글씨 쓰는데 재미가 붙은 첫째가 가족들 이름을  쓰면서 그랬다. 아빠랑 자기랑 동생은 똑같이 '김'이 있다고. 그래 나만 '장'씨다! 씩씩거리며 집을 나와 걷는데 그마저도 화가 난다. 애들 둘 다 너의 성을 따르는데, 왜 너는 당연하게 혼자 결혼식을 가? 나는 내 친구가 결혼해도 애 데리고 결혼식에 가는데? 너는 뭔데 혼자가? 아 생각할수록 화가 나네...


분노한 나는 그 자리에서 남편을 몰아붙였고, 남편은 미안하다고 늘 당신이 고생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난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지. 나도 너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여보, 미안해~ 자기가 (애보느라) 고생이 많아~" 나도 그런 말 그만 듣고, 너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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