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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Nov 15. 2022

아이라는 대접에 담긴 나라는 간장종지.

내리사랑 보다 큰 치 사랑.

얼마 전 남편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육아로 지쳐있던 마음은 남편의 무심한 말 한마디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나는 남편에게 울면서 소리쳤다. 내 안의 서운함이 눈물이 되고, 내 안의 울분이 소리가 되어 쏟아져 나왔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남편은 당황하고 말았다. 당황한 남편은 나와 잠시 거리를 두어 앉았다.


그러자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은 것은 다름 아닌 첫째 아이였다. 훌쩍거리며 씩씩거리고 앉아 있는 나에게 아이가 물었다. "아빠한테 화났어?" 그렇다는 나의 대답에 아이는 어디론가 가서 종이와 펜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마음의 여력이 없었다. 이 공간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이른 나는 부랴부랴 옷을 입고 짐을 챙겼다. 그러는 사이 종이를 가득 채운 첫째가 돌아왔다. 엄마에게 주는 편지라며 내 침대자리 옆 협탁에 그 편지를 테이프로 꼼꼼히 붙이고는 나를 다정히 바라보며 아직도 화가 나느냐고 묻는다. 나는 또 그렇다는 대답을 하고, 협탁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집을 나섰다. 


한참을 카페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힌 후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은 잠든 시간, 나는 그제야 침대 머리맡 협탁을 들여다보았다. 서툰 글씨로 쓴,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과 나의 이름, 그리고 예쁜 공주가 그려져 있었다. 엄마가 아빠에게 화를 내고 있던 그 순간에 아이는 나를 향한 사랑을 종이에 눌러 담고 있었다. 글씨를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아이는 어떻게 그 문장을 완성했을까. (나중에 물어보니 남편이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 문장을 완성하면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오로지 내 마음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마음에 갇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을 때, 나 말고도 내 마음을 생각해주던 사람. 그런 내 마음을 토닥여주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애를 쓰고 있던 딸. 


첫째가 써준 편지 (금새 찢어버린 둘째;;)


내가 화를 낼 만한 것으로 합당하게 화를 낸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아이 앞에서였다는 것은 언제나 미안함을 남긴다. 아이를 내 그릇에 담아야 하는데, 나는 자주 아이라는 대접에 담긴 간장종지가 된다. 사실 기분만이 아니라 진짜 나는 내 아이가 나보다 큰 그릇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를 그 아이의 딸이 아닌 엄마로 두신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른다. 그 아이를 키우다 보면 깨닫게 될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이에게 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아이에게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간장종지라, 내 것을 내 안에 잘 담아두지 못하고 자꾸만 밖으로 그것들을 흘려버리고 만다. 그렇게 밖으로 흐른 것을 받아내 주는 것은 나보다 그릇이 큰 (남편이고) 아이다. 그리고 밖에 흘러 지저분해진 바닥을 괜찮다는 말로 다독여 닦아내는 것 또한 (남편이고) 아이다.  조심성이 없어 맨날 이것저것 잘 흘리고는 “에이씨!”하는 나에게 아이는 “괜찮아~”라고 말한다. 공간지각 능력이 부족해 맨날 여기저기 부딪히고는 ”아야야! “하는 나에게 아이는 잽싸게 달려와 호호 입김을 불어준다. 이렇게 아이에게 벅찬 사랑을 받는 나는 조금이라도 더 큰 사람이, 좋은 사람이,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마저도 늘 실패하고 뒤집어지는 가벼운 간장종지지만 말이다. 


다음날 침대에 앉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책을 다 읽고 나자 문득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 화내지 마~” 책 얘기를 할 줄 알았던 나는 잠시 당황했다. 그때까지도 그 일을 마음에 담고 있던 것인가 미안함이 앞섰기에 얼른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그러고는 물었다. “엄마가 아빠한테 화를 내면 가을이는 어떤 기분이 들어?” “엄마가 아빠한테 화를 내면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아.” 


내가 내 눈물을 주체하지 않고 마구 쏟아내고 있을 때, 아이는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았던 것인가. 그렇게 눈물을 참으며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써준 것인가. 그날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나 때문에 (내가 이것밖에 안돼서) 아이가 상처받을까 무섭다고 말이다. 나보다 아이의 그릇이 훨씬 큰 것 같다며, 아이를 내 안에 담지 못하는 나의 속좁음을 탓하면서 말이다. 나는 지금 미래에 갚아야 할 빚을 쌓고 있는 것일까. 이 시간들이 빚처럼 싸여, 다 큰 아이가 정말 눈물을 쏟아내고 싶을 때 나를 찾아온다면 그때는 내가 아이의 눈물을 내 안에 다 받아내 주고, 두 손으로 사랑을 꾹꾹 눌러 담아 전해주고 싶다. 나에게 너라는 사랑을 보내주신 신께 감사하면서 말이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얼른 내 그릇을 키워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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