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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an 07. 2023

괜찮아,

아이의 괜찮다는 말에 괜찮지 않은 엄마 마음

첫째는 밤에 자다가 잘 깨는 편이다. 꿈을 꾼 건지 자다가 뭐라 뭐라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자다가 일어나서는 안방으로 넘어올 때도 많다. 며칠 전 새벽에는 자다가 갑자기 짜증을 내며 큰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같은 방에 자고 있던 둘째가 깰까 봐 남편은 얼른 첫째를 안아 올려 안방으로 옮겨 눕혔다. 내 옆으로 오게 됐는데도 첫째는 금방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을 부리며 발길질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한참 계속되는 짜증에 나도 욱 하고 화가 치밀었다.

이틀 전 장염을 앓았던 첫째에게 옮았는지 (결국 새벽에 토까지 하고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옮은 게 맞았었다.) 나도 하루종일 속이 울렁거려 몸상태가 안 좋은 상황이었고, 원래도 한 번 잠들면 잘 못 일어나는 타입이라 자다가 깨는 일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편이었다. 적당히 달래도 달래 지지 않고, 왜 그러는지 물어도 대답 없이 온몸으로 짜증을 내뿜는 첫째에게 결국 나도 짜증이 뻗쳤다. 


"김가을!!!!!

왜 그러는 거야 대체!!!!!

왜 계속 짜증이야 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둘째까지 깨서 남편 품에 안기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나는 더욱더 화가 뻗쳤다.


"너 때문에 여름이까지 깼자나!!!!!

왜 그래 너 진짜!!!!!"


이쯤 되면 내 잠을 깨운 데에 대한(그리고 다시 재우기 어려운 둘째까지 깨운 데에 대한) 화풀이를 하는 격이었다. 아이도 원래의 이유는 잊은 듯 자신의 팔뚝을 움켜쥐고 윽박을 지르는 엄마를 보며 진짜 토를 하듯 울음을 토해냈다. 구역질을 하듯 울음을 쏟아내는 아이를 보면서도 나는 한참을 씩씩거렸다.


어디가 아픈 거냐고 묻는 아빠에게 아이는 팔꿈치가 아프다고 했다. 내복을 걷어붙이고 팔꿈치를 확인해봐 주었지만 멀쩡했다. 팔꿈치를 다친 거냐고 물으니, 소파에 부딪혔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 뭐라도 변명거리를 찾아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니 순간 딱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자 점차 화가 누그러들었다. 자다가 팔꿈치를 소파에 부딪혔을 리 만무하지만 아프다니 팔꿈치를 주물러주고 호호 입김도 불어주었다.


첫째를 얼추 달래고, 둘째를 재우러 작은방으로 들어간 남편을 뒤로하고 냉수를 들이키며 화르륵 거리던 마음을 잠재우고 나자 나도 제정신이 돌아왔다. 아이에게도 물 한 모금을 건네주었지만, 아이는 아직 다 진정이 되지 않았는지 금세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훌쩍이는 아이 옆에 누워 아이를 안아주었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것 같아도, 약을 주어야 했다.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가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나의 머쓱한 사과에 아이는 대뜸 괜찮다고 했다. 아직도 멈추지 못한 눈물로 훌쩍거리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은 눈물로 글썽거리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기 자신보다 엄마를 더 걱정하는 마음이 눈에 어려 있었다. 그 눈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을 보이며 엄마가 이러이러해서 화를 낸 거라고 설명하는 나의 모습에, 아이는 더 슬프고 당황스러운 눈빛을 비추며 나에게 연신 괜찮다고 했다. 엄마도 몸이 안좋은데가을이가 이유 없이 계속 짜증을 내서 화가 잘 누그러지지 않았다고, 그래도 그렇게 화를 낸 것은 미안하다고 하자, 자기도 그럴 때가 있다며 또 괜찮다고 하는 아이다. 이 와중에 공감이라니...


괜찮기는 뭐가 괜찮겠는가. 자다가 뭔가가 (몸이든 마음이든) 불편해서 울고불고 짜증을 부렸을 것인데, 그걸로 엄마가 윽박을 지르며 화를 냈으니 괜찮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첫째는 평소에도 내가 조금이라도 언성을 높이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목소리나 억양이 조금이라도 화를 내는 것 같으면, 나에게 와서 제발 화를 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진짜’ 화를 냈으니, 아이는 괜찮을 수 없었다.  그러면 더 울고불고했을 수도, 혹은 무서웠다고 말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보다 나의 감정을 더 배려한 나머지 네 돌짜리가 연신 괜찮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화내서 무서웠냐는 질문에는 잠시 눈으로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고민하더니 금방 화해해서 괜찮다고 한다. 무서웠다고 하면 내가 상처라도 받을까 신경이 쓰였던 것일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너의 그 모습에 나는 또 한 번 아이라는 대접에 담긴 간장종지가 된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MBTI를 5순위까지 뽑은 게시글을 본 적이 있었다. 내 MBTI가 1순위였다. 감정을 숨기지 못해 순수해서 인기가 많다 적혀있었지만, 나는 주로 내 감정을 숨기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렇게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가감 없이 드러내는 엄마 앞에서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는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나는 감히 그 깊이를 가늠해볼 수가 없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미안한 마음이 더 큰 건지 고마운 마음이 더 큰 건지 모르겠다. 아마 그것보다 더 깊이, 아픈 마음이 가장 크게 자리했던 것 같다.


남편이 나에게 화를 내도 '괜찮다'라고 했을 때는 나의 부정적 감정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그의 모습에 그와 평생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화를 낸 나에게 연신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는 아이 앞에서는 내가 이 아이와 평생 함께 할 엄마라는 게 전혀 괜찮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나의 감정을 받아주는 게 아니라, 내가 너의 감정을 받아주어야 하는데 자꾸만 그게 반대로 되는 것이 속상하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되려나. 나는 언제 나의 그릇에 너를 담아보려나. 그런 의미로 쓰인 가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시간을 되돌릴 순 없나요. 조금만 늦춰줄 순 없나요."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아 난 정말 얼마나 더 살아야 사랑을 알려나. 오늘도 이 못난 엄마는 일기를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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