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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Feb 06. 2021

GTA에 대한 성찰

락스타 게임즈의 <레드 데드 리뎀션 2>

*게임의 주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락스타 게임즈'라는 이름은 하나의 커다란 브랜드 가치를 지니는 제작사이다. 락스타 게임즈의 대표작인 <GTA 시리즈>는 특유의 폭력성, 선정성, 반사회성으로 언제나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의 또 다른 작품인 <맨헌트>는 미국에서 게임 규제에 대한 논의를 급속도로 진전시키기도 했던 게임이다. 어쨌든 <GTA>의 악명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자자하다. 아이들에게 절대로 시켜서는 안 될 게임,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게임으로 말이다. 이쯤 되면 락스타 게임즈는 폭력적인 게임 전문 제작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GTA 5>

 그렇다면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는 어떨까. 2010년에 발매되었던 1편은 락스타 게임즈 특유의 생생한 오픈월드 세계와 훌륭한 내러티브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그 해 최고의 게임으로 회자되고는 했다(비록 대한민국에서는 현지화가 되지 않았기에 플레이해본 게이머들이 많이 없다). <레드 데드 리뎀션> 또한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범죄자를 조작하며 은행을 털고, 마차와 기차를 훔치고, 시민과 보안관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이런 면에서 <GTA 시리즈>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실제로 본인도 <레드 데드 리뎀션>에 대해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GTA 5>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불쾌감 또한 여전하리라 느꼈기에 서부극을 사랑하면서도 이 게임에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작년 연말 우연찮은 기회로 콘솔 게임기가 생기게 되었고, 주변에서 다들 <레드 데드 리뎀션 2>를 꼭 해보라며 추천해 주었다. 서부 세계를 충실히 재현했다기에 기대도 되었지만, <GTA 5>에서 느꼈던 불쾌감이 그대로일까 걱정이 되었고 하다가 맞지 않으면 바로 관둬야겠다 다짐하며 구매를 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 160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필자는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세계 속에 빠져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GTA 시리즈>와 비슷한 구조를 가졌으면서도, 게임의 맥락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닌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세계는 1890년대의 미국 서부로, 무법자의 시대가 저물고 법치주의적인 질서가 정립되는 사이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법자의 몰락이라는 소재는 샘 페킨파의 대표작들을 포함한 수많은 서부극에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다뤄왔던 테마이다(너무나도 많기에 따로 언급은 않겠다). 본 게임의 내러티브 또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유사 가족의 형태를 띠는 대안 공동체의 일원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차별점만 두고 있다. 전체적으로 고전 서부극에 대한 존중이 엿보이지만, 거기에서 그쳤다면 그냥 평범하게 잘 만든 장르물에서 그쳤을 것이고, <라스트 오브 어스 2>가 받았던 평가처럼 영화매체를 어쭙잖게 베끼려고만 한다는 비아냥이나 들었을 것이다.

서부극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린 연출 또한 볼만하다.

 여기서 락스타 게임즈는 '게임'이라는 매체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극대화시킨다. '게임'과 '영화'가 가지는 절대적인 차이는, 플레이어(관객)가 캐릭터(등장인물)를 직접 조작할 수 있냐 없느냐일 것이다. 이 차이 때문에 영화매체는 근본적으로 관객이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그칠 수밖에 없고, 시각, 음향적인 대리만족은 가능하겠지만 체험적, 경험적인 성취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게임은 직접적인 조작을 통해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고, 이야기 속의 세계관에 더 직접적으로 동화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락스타 게임즈 특유의 사실적인 '오픈 월드' 시스템, 더해서 <레드 데드 리뎀션 2>만이 가지는 시뮬레이션적인 극사실주의 묘사와 느릿한 호흡이 빛을 발한다. 등장인물들이 그저 평범한 NPC, 데이터 하나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캐릭터)와 직접적으로 교감하고 영향을 받는 살아있는 인물로 느껴지고, 아이템 루팅을 위해 일일이 시체를 뒤지고 서랍을 열어야 하는 불편함, 사냥 후 동물 가죽을 벗기는 모션, 캐릭터와 말의 체중 관리, 음식 섭취, 사실적인 기후 변화와 실제로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생태계마저 있다. 이 모든  게임으로써는 불합리하고 불편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플레이어에게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세계는 실존하는 세계이며, 내가 그 속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동물들의 묘사를 보고 있노라면 세계가 살아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게다가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대략 6~70시간 정도의 분량을 가지는 메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자잘한 서브 퀘스트를 더하면 100시간 전후로 늘어난다. 솔직히 말해서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길다. 이렇게까지 길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게임 자체도 엄청 느릿하고 정적인, 어떻게 말하면 답답한 호흡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초반에 지루함을 못 이기고 내팽개치기 일쑤다. 왜 게임을 '이렇게까지' 접근성이 떨어지게 만들었냐 궁금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본 게임의 메인 플롯은 앞서 언급했듯이 사회가 변해가는 혼란기 속에서 변화에 도태되는 무법자 주인공과, 그들 조직의 파멸,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지점은, 근본적인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아서 모건은 작중 초반에는 무자비한 무법자이자 살인자이다. 채무자가 갚을 돈이 없다고 하자 아내 몸을 팔아서라도 갚으라며 독촉하고,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랑곳 않고 죽기 직전까지 때리기도 한다. 하루 먹을 끼니도 없다는 사람의 음식과 얼마 없는 돈마저 빼앗아가기도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갱단의 리더, 더치 반 더 린드의 이상론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에 아서는 그의 리더십을 의심하게 되고,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그와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석연찮은 감정을 느낀다. 그러다가 아서는 이전에 채무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그의 결핵이 옮았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실제로 사창가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아내를 맞닥트리게 되며 죄책감에 휩싸인다.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들이 여러 형태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며 아서는 자신이 추구하던 정의와 이상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고, 종국에는 '가족'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존과 그의 아내 아비게일, 아들 잭에게 새 삶을 부여하는 것을 도와주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자신만의 속죄를 이루게 된다.

본작의 주인공 아서 모건

 게임 속 설정 상, 아서 모건은 수 천 명의 사람을 학살한 전설적인 무법자이다. 그런 범죄자인 그가 범죄자의 가족에게 새 삶을 부여해주는 것으로 속죄를 한다니, 위선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이 게임은 100시간 가까이 되는 느릿한 이야기 속에서 아서의 행동과 감정, 고뇌, 도덕적인 딜레마를 플레이어가 직접 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초반의 빚 수금 퀘스트에서 '어쨌든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라며 무자비하게 대하기 마련이다(물론 초반에는 게임 내에서 자비를 베푼다는 선택지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살상과 그 속에서 이어지는 소중한 주변 인물들의 죽음, 타락해가는 과정을 보며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아서와 감정을 공유하며 초반부의 화목했던 갱단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내가(갱단이) 저질러온 범죄들, 폭력들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아서의 선택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플레이어를 설득시키고 만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락스타 게임즈와 <GTA 시리즈>에 관한 이야기처럼,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레드 데드 리뎀션 2>를 플레이하면서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가져가기를 원한다. <GTA 시리즈>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총을 쏘고, 폭력을 행사하고, 은행을 털고 차를 훔치고 경찰들과 추격전을 벌이는 그런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플레이 말이다. 물론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세계 속에서도, 서부시대라는 배경에 걸맞게 이러한 콘텐츠들이 충실하게 구현되어 있다.  하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내러티브는 폭력적인 플레이를 계속해오던 플레이어에게 자신의 플레이(행동)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도덕적인 딜레마를 갖게 하며, 종국에는 성찰하도록 설득한다는 점에서 <GTA 시리즈>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여기에서 본 게임만의 특징인 명예 시스템이 빛을 발한다). <GTA 시리즈>에서의 폭력과 범죄 행위들은 모두 가학성을 전시하고 폭력성을 표출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도구에 불과했다면, <레드 데드 리뎀션 2>에서의 폭력은 플레이어에게 도덕적 딜레마를 갖게 하는 수단으로써 기능한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설득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내러티브는 탁월하기 그지없었고, 교조적이라는 인상을 주며 게이머들에게 반발만 불러일으켰던 <라스트 오브 어스 2>와 확실히 대비될 수밖에 없다. 여담으로, 폭력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라는 주제가 서부극의 핵심을 관통하는 요소라는 것을 돌이켜보면, 장르와 고전에 대한 존중마저 엿보인다 할 수 있겠다.

메인 스토리 도중 여성 참정권 시위를 돕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레드 데드 리뎀션 2> 내에는 여성 참정권 에피소드, 흑인 인종 차별, 아메리칸 원주민 학살, 노동자 착취 같은 다양한 소수자와 약자들의 이야기가 메인 플롯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GTA 시리즈>가 맹목적으로 '올바름을 거부하는' 반사회적인 정서를 띄고 있었다면,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소수자, 약자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진정한 정의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GTA 시리즈>의 반사회성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결과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하고 있던 시기에(본 게임은 2018년 발매된 작품이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혐오와 막말을 당당하게 쏟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는 지금 시대에 걸맞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GTA 시리즈>의 훌륭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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